말룽꺄뿟따경에 대한 법문
  글쓴이 : 마을지기     날짜 : 06-12-16 10:29     조회 : 6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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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룽꺄뿟따경에 대한 법문


1. 서언

2. 부처님의 법문

3. 위빠싸나 질문 Ⅰ

    아닛티간다 꾸마라 이야기

4. 말룽꺄뿟따의 대답

5. 간단한 위빠싸나 수행법

6. 안식(眼識)의 흐름

7. 이식(耳識)의 흐름

8. 궁극적 실재(빠라맛타) 보기

9. 안문(眼門)에서 의문(意門)까지

10. 개념적 지식의 탄생

    뽓틸라 장로


11. 결정적인 순간의 포착

12. 비난에 대한 답변

13. 들음 등에 대한 명상

14. 위빠싸나 지혜의 이익

15. 닙바나로 향함(inclination)

16. 이 경의 요약

17. 볼 때 물질을 보는 수행에 실패

18. 물질에 대해 수행하면 닙바나에 가까이가게 된다

19. 위빠싸나 질문 Ⅱ

20. 빤냣띠와 빠라맛타


21. 들을 때 소리에 대한 수행의 실패

    난다 장로

22. 소리에 대해 수행하면 닙바나에 가까이가게 된다

23. 위빠싸나 질문 Ⅲ

24. 냄새맡을 때 냄새에 대한 수행의 실패

25. 냄새에 대해 수행하면 닙바나에 가까이가게 된다

26. 위빠싸나 질문 Ⅳ

27. 맛 볼 때 맛에 대한 수행의 실패

28. 맛에 대해 수행하면 닙바나에 가까이가게 된다

29. 법의 체험

30. 위빠싸나 질문 Ⅴ


31. 호흡에 대한 사띠가 추천되지 않은 이유

32.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경전과 합치한다

33. 접촉할 때 느낌에 대한 수행의 실패

34. 느낌에 대해 수행하면 닙바나에 가까이가게 된다

35. 바른 방법을 인정하지 않음

36. 위빠싸나 질문 Ⅵ

37. 생각할 때 마음의 대상에 대한 수행의 실패


에필로그








말룽끼야뿟따경 법문

(1977년 와가웅(Wagaung)의 8번째 waning에 법문)


1. 서언


말룽꺄뿟따경은 우리들에게 통찰명상 즉 위빠싸나의 원리와 수행 방법에 관한 기본 지식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빨리 경장의 상윳따 니까야에 실려 있으며, 그 안에 있는 24개의 시는 테라 가타의 위사띠 닙빠따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스리랑카 경전에 의하면, 말룽꺄뿟따경은 여자불자인 말룽끼야(Malunkya) 혹은 말루끼야(Malukya)의 아들인 말룽꺄뿟따(Malukyaputta) 비구의 요청에 의해 부처님께서 법문하신 것입니다. 말룽꺄뿟따는 이렇게 부처님께 청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법을 간단하게 설해 주시면 유익하게 되도록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 법의 핵심을 들은 다음, 혼자 살면서, 방심하지 않고(appamatto), 열심히(atapi) 바르게 노력하며, 한 마음으로 다른 생각하지 않고(pahitatto) 수행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요컨대 말룽꺄뿟따가 조용한 장소에 가서 바른 방법으로 수행에 전념하고자 하니, 부처님께서 명상주제(kammatthana)를 선택하시어 그것을 간결하게 설명해 주시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에 있어서 혼자 사는 것은 집중력인 사마디(삼매)가 생기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살면 방해받기 쉽습니다. 혼자 살 형편이 안 되어 다른 사람과 같이 살 때에는 자신의 수행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처다 보지도 말고 명상주제에 마음을 고정해야 합니다.


방심하지 않고(압빠맛또)


압빠맛또(appamatto)는 '방심하지 않고(vigilant)'라는 뜻입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 선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들은 대개 방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법의 체험을 위해 힘써 노력하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상을 볼 때 그들은 방심하지 않고 주시합니다.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감촉하거나 생각할 때에도, 그들은 들음, 냄새 맡음, 맛 봄, 닿음이나 생각함에 항상 마음을 기울입니다(mindful). 그들은 아주 작은 행동 즉 움직임도 알아차림을 놓칠 때 즉 관찰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unnoticed or unobserved)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항상 깨어 있는(alert) 상태를 유지합니다. 더 잘 알아차리려는 의도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열심히(아따삐)


아따삐(atapi)의 어원적 의미는 '뜨겁게 하다'입니다. 무엇엔가 열중하고 있을 때, 아따삐가 열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열기는 물을 증발시킵니다. 열의는 모든 낄레사 즉 모든 종류의 번뇌를 증발시킵니다. 파리는 빨갛게 단 쇳덩어리 주위를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번뇌는 파리에 비유되고 열의는 빨갛게 단 쇳덩어리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열의가 결핍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안이비설신의)을 통하여 몸으로 침입하여, 조건지어진 모든 것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주시하는데(note) 실패한 보통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수행하는 수행자에게는 번뇌가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경전에 의하면 번뇌는 습기(wetness)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최대한의 열정과 열의를 가지고 수행을 하면 번뇌가 사라져서 마음이 절대적으로 건조하고 깨끗하게 됩니다.


네 가지 바른 노력


바른 노력(正勤, sammappadhana)에는 네 가지 범주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건전하지 않은 행위(不善業)를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염병에 대한 예방조치로서 여러 가지 의학적 대비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일상 생활에서 불건전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그런 일을 접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며 자신이 불선업에 오염되지 않게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이미 일어난 불선업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입니다. 이는 불선업의 재발을 막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번뇌가 생기기 쉬운 경향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선업을 일시적으로는 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불선업을 행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면, 결국은 그에 압도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는 행위 혹은 듣는 행위는 감각대상에 마음이 쏠리는 경향을 촉진하는데, 그런 경향은 아람마나누사야(arammananusaya)라고 합니다. 이는 번뇌의 근본 원인이 되므로 수행자에게 아람마나누사야가 있으면 수행이 잘 되지 않습니다. 수행자가 도(道)에 들어서면 내면에 만연되어 있는 근본적인 번뇌(prototypes of kilesa) 즉 산타나누사야(santananusaya)가 일시에 사라집니다.

(3) 셋째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건전한 행위(선업)가 일어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직 좋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즉시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수행을 하십시오. 그러면 선업(kusala dhamma)이 축적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아직 하지 않고 있다면 위빠싸나 수행(통찰 명상)을 할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위빠싸나를 해서 위빠싸나 지혜(통찰 지혜)를 얻고, 계속해서 수행하여 도(道)를 체험할 때까지 계속하십시오.

(4) 마지막으로 도에 들어갈 때까지 선업을 지속적으로 계발하는 노력입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자들은, 자신이 악한 일을 하지 않고, 한 번 한 악한 일을 다시 하지 않도록,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한 선업을 하고, 선업을 했을 때에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계발하기 위하여, 이 네 가지를 모두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빠히땃또(pahitatto)


과거의 번역가들은 보통 빠히땃또를 '닙바나를 향한 마음(with a mind despatched to Nibbana)'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빠히땃또의 문자적인 의미를 쫓아서 어떤 사람은 일단 수행자의 마음이 닙바나의 개념을 파악했으면 수행자가 굳이 법에 따라 수행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이는 불교 경전에 어긋납니다. 빠히땃또가 의미하는 것은, 마음을 도와 과와 닙바나에 고정시키고 생명을 걸고 수행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이는 정신 수행(mental culture)에 관한 실락칸다 경의 주석서와 일치합니다.

2. 부처님의 법문


부처님께서는 말룽꺄뿟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룽꺄뿟따여, 어떻게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가? 다른 비구가 나에게 이런 요구를 할 때 내가 어떻게 말할 것 같은가? 그대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인생의 후반부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나에게 법의 요점을 법문해 달라고 요구하는구나!

부처님의 말씀은 책망과 칭찬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늙은 비구는 젊었을 때 법을 얻기 위해 분투하지 않았습니다. 한 발은 무덤 가까이에 가 있는 지금에서야 법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부처님의 법문을 받아들였다면 말룽꺄뿟따는 수행을 그만 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룽꺄뿟따는 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은둔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젊은 비구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그들은 그를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부처님께서 그를 칭찬하셨다고 봐야 합니다. 오늘날 나이 든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법을 체험하기 위하여 분발하는 모습을 젊은이가 본다면, 그는 그들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말룽꺄뿟따가 되풀이하여 간청하자, 세존께서는 연속적으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게 되면 위빠싸나 수행법의 기초를 저절로 체득하게 됩니다.


3. 위빠싸나 질문 Ⅰ


말룽꺄뿟따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음 질문에 대해서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해 보아라. 이전에 그대가 가까운 과거나 오래 된 과거에도 본 적이 없고, 현재나 미래에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시각대상이 있다고 하자. 그러한 대상에 대해 그대가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착을 가질 수 있겠느냐?

우리가 맨 눈(裸眼)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이 실재(實在) 즉 빠라맛타(paramattha)입니다. 그러나 실재는 아니지만 마음에 실재인 듯한 것(verisimilitude)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상상이나 꿈에 나타나는 대상들인데, 이들은 모두 개념 즉 빤냣띠(pannatti)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전에는 오래 된 과거의 대상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 기억하고 있는 전생의 대상에 관한 것입니다. 부처님 시절에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빠띠뿌지까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전생의 남편은 말라바리라는 천인(天人)이었습니다. 그녀는 전생의 남편을 계속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경전에 언급된 오래 된 과거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꿈꾸거나 상상하는 것에 대해 집착한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꿈꾸거나 상상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집착이 생길 수 없습니다. 생각한 일도 상상으로 만난 적도 없는 여자를 남자가 사랑하게 될 리 없고, 이는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의 질문에 말룽꺄뿟따는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오래 된 과거나 가까운 과거에도 본 적이 없고, 현재나, 혹은 미래에도 결코 볼 가망이 없는 대상에 대해서, 제가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착을 가질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아닛티간다 꾸마라 이야기



법구경의 주석서에 자신의 마음 속에 상상으로 만든 미녀에게 사랑에 빠진 아닛티간다 꾸마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사람이 꿈이나 상상으로 어떤 상을 만든다면, 그 상에 대해서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착을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닛티간다 꾸마라는 사왓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전생은 범천이었습니다. 범천계(梵天界)에서 사는 동안 그는 감각적 욕망이나 탐욕의 속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다음에도 그는 이성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성년이 되자 부모님은 결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싫어하는 그는 "저는 아내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부모가 계속 결혼할 것을 강요하자 결혼을 모면하려고 그는 꾀를 냈습니다. 조각가를 물색하여 금으로 아름다운 소녀상을 만들게 한 다음, 그 조각처럼 생긴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겠다고 부모에게 말했습니다. 부자이며 능력 있는 부모는 브라만들을 고용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아들이 금으로 만든  미녀상에 필적하는 신부를 찾도록 했습니다.

브라만들이 맛다 왕국(Madda Kingdom)의 사갈라(Sagala)라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 미녀인 16세의 소녀가 7층탑에 유폐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부모를 찾아내어 미모를 감정해 보게 해 달라고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탑에서 내려왔을 때, 그들은 그녀가 금상보다 훨씬더 아름답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중매인들은 부모에게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밝히고 미의 여왕이 아닛티간다 꾸마라의 신부가 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허락을 받은 다음 밀사들은 신랑의 부모에게 그 소식을 급히 보냈습니다. 그러자 부모는 신부가 조각보다 훨씬더 아름답다는 소식에 신부를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떠서 가능한 한 급히 데려 오게 했습니다. 이것이 순전히 상상으로부터 생긴 집착의 예입니다.

사갈라와 사왓티는 오백 마일 이상 떨어져 있었고 그 당시의 수송 수단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말이 끄는 수레에 탔을 것입니다. 그녀는 여행 도중에 완전히 기진맥진했고, 불행하게도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아닛티간다 꾸마라는 이 소식을 듣고 그녀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볼 기회마저 놓친 것에 대해 너무나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탁발하러 그의 집에 들리셨습니다. 부모는 정중하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깨달으신 분에게 아들을 보여드렸습니다.

슬픔과 근심의 뿌리는 탐욕과 감각적 욕망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으로 인하여 비탄이 생기고,

두려움과 근심도 또한 그러하다.

욕망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사람은

비탄도 두려움도 사라졌음을 안다.

이 법문을 들은 젊은이는 성자의 흐름에 들은 수다원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그는 결혼을 반대하여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워 부모의 눈가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제 그가 만든 것보다 더 아름다운 미녀를 발견함에 의해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자, 그의 내면에서 집착이 생겨나서 그의 순진한 마음을 괴롭힌 것입니다.


4. 말룽꺄뿟따의 대답


부처님의 질문에 대해서 말룽꺄뿟따는 전에 경험한 적이 없고, 지금 현재 경험하고 있지도 않고, 미래에 꿈에서라도 경험할 가망이 없는 감각대상에 대해서는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착이 생길 수 없다는 취지로 대답했습니다. 여기 이 선원에서 명상하고 있는 수행자는 이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위빠싸나 수행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1952년에 내가 빠테인에 있는 탓담마 티따구 선원에서 말룽꺄뿟따경을 설했을 때, 탓담마 티따구 사야도의 누이도 참석했었습니다. 그녀는 본 적이 없는 물질이나 마음 속으로 상상할 수 없는 물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그건 어떤 물질일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녀는 지성적인 사람이었으나 스스로 위빠싸나 수행을 하기 전까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수행해 본 다음에 그녀는 법의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수행하여 지혜를 얻게 되자 너무 기뻐서 법문에서 배운 것을 다른 신봉자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려 깊은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감각대상들은 탐욕을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이 전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 대해 애착을 품을 수 있습니까? 그런 경우에 애착만이 아니라 증오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견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내가 여러분들이 기억하기 쉽게 다음 격언을 만들었습니다.

(1) 시각대상이 보이지 않을 때 번뇌는 스스로 멈춘다.

(2) 시각대상이 보이면 번뇌는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3)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알아차림에 의해 마음을 가라앉혀서 마음 속에 잠복하고 있는 번뇌를 쫓아버려라.

(4) 부처님께서 말룽꺄뿟따에게 제시하신 질문은 위빠싸나 수행법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전에 만난 적이 없는 대상은 번뇌를 일으키는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착이 생기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마도 명백해졌을 것입니다. 이로부터 전에 보거나 알게 된 적이 있는 대상은 번뇌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룽꺄뿟따가 그 사실에 주목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상을 회상할 때마다 번뇌가 계속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이 미소짓거나 찌푸린 모습을 봤다면, 그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미소짓거나 찌푸린 얼굴이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다시 나타날 때마다 그 장면이 만들어내는 인상에 따라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반응할 것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여러분들이 본 대상을 회상할 때마다 그 대상은 탐욕이 일어나게 하고, 여러분들은 탐욕스럽게 될 것입니다. 분노와 어리석음도 비슷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보는 현상마다 주시하지 못한다면, 조건지어진 사물의 무상하고 주체가 없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에 따라 번뇌가 여러분들의 내부에 고착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지런히 알아차리면, 번뇌는 단지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상함의 본성을 알게 됐을 때, 번뇌는 더 이상 여러분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물을 볼 때 여러분들이 보는 것을 주시해서 무상을 알아차리면, 번뇌는 나타날 기회가 없습니다. 번뇌는 보통 여러분들의 몸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을 장악할 기회를 엿보면서 잠복해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는 현상을 주시해서 그 본성을 알아차린다면, 여러분들은 무상을 체험할 것이고, 그에 따라 번뇌는 가라앉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은 마치 대상을 지각하지 않은 것처럼 교란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는 여러분들이 위빠싸나 수행을 가장 잘 하는 방법을 알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부처님의 질문에 대답하면 위빠싸나 수행법을 알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소리와 귀와 관련된 부처님의 질문에 대한 법문도 곧 하겠습니다. 그 전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간단한 위빠싸나 수행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5. 간단한 위빠싸나 수행법


말룽꺄뿟따여! 대상들이 보이거나, 들리거나, 생각이 떠오르거나, 알아질 때에는, 단지 그것들은 보인 대로, 들린 대로, 생각이 떠오른 대로, 알아지는 대로 놓아두어라. 그대가 대상을 볼 때는 단지 보기만 하고, 들을 때에는 단지 듣기만 하고, 생각할 때에는 단지 생각만 하고, 알 때에는 단지 알기만 하거라.

앞에서는 감각대상들이 여섯 개의 감각의 문(육문)을 통해 들어오지 못 하면, 번뇌가 생길 기회를 상실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는 감각대상이 육문에 나타났을 때 번뇌를 어떻게 없애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네 가지 경우(mode)와 관련해서 위빠싸나 수행 방법의 요점을 알려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냄새와 맛과 감촉은 간결하게 하게 위하여 생각의 범주에 포함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삼법인인 무상·고·무아에 대한 명상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네 가지 경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들 감각들과 감각대상들은 '나'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고, '나의 자아'도 아닙니다. 대상들은 단지 한 순간 동안 감각의 문에 나타날 뿐이고, 주체는 단지 그 순간 동안 그들을 보고 들을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수행 방법의 요점입니다.


6. 안식(眼識)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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