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앎을 가지고 마음챙김 - 우 실라난다 사야도
  글쓴이 : 마을지기     날짜 : 06-12-16 10:38     조회 : 6987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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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앎을 가지고 마음챙김


몸의 관찰에 관한 세 번째 소절(subsection)은 “분명한 앎을 가지고 마음챙김”이라고 불립니다.


수행을 가르치는 스승(masters)들이 위빠싸나 수행에 대한 지침을 주거나 이야기를 할 때, 수행자는 여러 표현을 씁니다만 같은 것을 뜻합니다. “대상을 알아차린다(to be aware of the object)", "그것에 대하여 마음을 챙긴다(be mindful of it)", "그것을 지켜본다(watch it)", "그것을 주목한다(take note of it)", "그것을 관찰한다(observe it)", "그것을 분명히 보려고 노력한다(try to see it clearly)", "그것을 분명히 알려고 노력한다(try to know it clearly)", 이모든 가르침은 똑같습니다. 그 말들은 ”마음을 대상에 두고 그것을 면밀히 그리고 정확히 관찰한다“라는 뜻입니다.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가던지 뒤로 가던지, 비구는 분명한 앎을 적용한다.          


부처님께서 꼭 적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명한 앎은 무엇인가?  수행자가 분명한 앎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에 앞서, 수행자는 우선 “분명한 앎”이라는 용어의 뜻을 알아야합니다. 그 뜻을 알려면, 주석서를 들추어보고 팔리어 원어인 삼파자냐(sampajanna)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삼파자냐(sampajanna)라는 말은 “정확하게 보는 사람”, “정확하게, 완전히 그리고 평등하게 또는 고르게 아는 사람”이라는 뜻인 삼파자나(sampajana)에서 유래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삼파자나 라고 불리면, 그 남자 또는 그 여자의 생존의 상태를 삼파자냐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삼파자냐는 “바르게, 완전히, 그리고 고르게 또는 평등하게 보는 것 또는 아는 것 또는 식별하는 것”을 뜻합니다. 삼파자냐(sampajanna)라는 말에서 삼(sam)이란 음절은 많은 뜻을 지닌 접두사(prefix)입니다. 보충주석서는 이 말의 세 가지 뜻을 설명합니다.    


삼(sam)의 첫 번째 뜻은 “바르게” 또는 “정확히”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수행의 대상들을 보려고 또는 관찰하려고 노력할 때, 그것들을 분명히 그리고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다른  것들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수행자가 마음을 물질로부터 물질을 마음으로부터 분간하는 때, 수행자는 마음을 물질로부터 띠어서 물질을 마음으로부터 띠어서 보아야합니다. 이 둘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수행자는 정확히 그리고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는 바르게 또는 정확히 보아야한다”라는 말의 뜻입니다.


삼(sam)의 두 번째 뜻은 “완전히”입니다. 수행자가 하나의 대상을 보거나 또는 분간할 때, 그것 전체로서 알아야 합니다. 그것 전체로서 라는 것은 정신적 또는 물질적 현상의 모든 면으로서 라는 뜻입니다. 수행자는 주어진 하나의 대상의 특성, 기능 과 징후를 알아야합니다.


삼(sam)의 세 번째 뜻은 “평등하게” 또는 “고르게”입니다. 수행자는 정신적 기능(mental faculties)을 어떻게 고르게 적용하나를 알아야합니다. 위빠싸나 수행을 할 때, 수행자는 다섯 가지 정신적 기능들이 작용하도록 합니다. 다섯 가지 정신적 기능은 확신, 정진, 마음챙김, 집중과 지혜입니다. 수행자는 조화롭게 서로균형 되게 작용해야합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정진과 집중의 균형입니다. 이 기능들이 고르고 평등할 때, 집중이 있게되고 집중에서 지혜가 일어날것입니다. 이 기능들이 불균형일 때, 집중은 방해되고 흩어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물체의 본바탕의 통찰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분명한 앎”이란 정확히 보고, 모든 것을 전체로서 보고, 모든 정신적 기능을 고르게 사용해서 그것을 본다는 뜻입니다. 다섯 가지 정신적 기능을 적용함에 균형이 있을 때만, 지혜의 한층 더한 계발이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가 분명한 앎을 적용할 때, 그것은 수행자가 대상을 관찰(observe) 또는 주목(take note of)하고, 그것에 대하여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고(paying close attention), 그것을 철저히 정확히 그리고 모든 정신적 기능들의 균형을 이루면서 보려고 노력한다라는 뜻입니다.


주석서에 네 가지 종류의 분명한 앎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무슨 이익이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앎”입니다. 두 번째는“무엇이 적절한가에 대한 분명한 앎”입니다. 세 번째는 “수행자의 영역(domain)에 대한 분명한 앎”이고 네 번째는“망상이 아닌 것에 대한 분명한 앎”입니다. 수행자는 몸의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를 네 가지 종류의 분명한 앎을 마음에 두어 이해하고 관찰해야합니다.   


“무슨 이익이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앎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하기 전에, 그것을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수행자가 그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면, 수행자는 그것을 할 것입니다. 수행자가 그것이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수행자는 그것을 하는 것을 피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지에 가는 것 또는 보리수나무에 가는 것은 불교도에게는 유익한 행동입니다. 불교도들이 이러한 장소에 가서 절을 하면, 수행자는 공덕을 쌓는 것인바 그것은 그들이 적극 적인 정신상태를 양성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면 좋은 것이고 유익할 것입니다. 이야기하는 것, 특히 법에 관한 이야기(Dhamma talks)를 하는 것, 은 역시 하면 유익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위빠싸나 수행을 할 때, 죽은 시체를 관찰하고 그것의 본바탕이 그들 자신의 몸의 본바탕이라고 이해할 때 이것 또한 참된 것입니다. 이들은 유익한 행위인바 그것을 행한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이익이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앎이라는 첫 번째 분명한 앎입니다.


수행자가 어떤 행위가 유익하다고 알았을 때, 수행자는 그래도 바로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에 생각할 것은 그것이 적절하냐 그렇지 않으냐 입니다. 때로는 어떤 것을 하는 것이 유익할지라도, 장소 와 때에 따라서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지, 파고다, 또는 보리수나무에 가는 것은 유익하나, 먼 구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파고다축제가 있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수행자는 그곳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곳에 가면, 많은 사람과 많은 사물을 볼 것이고, 수행자는 산만해질 것이며 그들의 수행은 방해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성지에 가거나 또는 보리수나무에 가는 것이 유익할지라도,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수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법에 관한 이야기(Dhamma talk)를 하는 것은, 예를 들면,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한테도 유익합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있고 흥겹게 떠드는 어떤 행사가 진행될 때,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적절한 때도 적절한 장소도 안입니다. 또한, 스님이 여인에게 호젓한 곳에서, 즉 여자와 함께 혼자 있을 때, 설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적절한가 않은가 검토하는 것이 두 번째의 분명한 앎, “무엇이 적절한가에 대한 분명한 앎”입니다.


게다가, 시체를 보고 그것의 본바탕을 자신의 몸에 적용하는“무엇이 적절한가에 대한 분명한 앎”은 유익할지 모르나, 수행자가 색을 좋아하는 생각으로 시체를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적절한 행위와 수행의 적절한 대상이 안입니다.


이 두 종류의 분명한 앎은 어떤 보통 일상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이 두 개의 분명한 앎을 그들이 하고 있는 것에 적용할 때, 수행자는 나쁜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행자는 성공할 것입니다.


“수행자의 영역”이 세 번째의 분명한 앎입니다. 수행자의 영역이란 호젓한데서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그들의 자신의 영역 또는 자신의 영토에 머무르면, 그들에게 어떤 해악도  닥치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아무도 그들을 귀찮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영역을 떠나면,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자신들의 영토, 마음챙김의 네 가지 대상인 자신들의 영역, 에 살라고 충고 하셨습니다. 마음챙김의 네 가지 대상의 수행을 수행자의 영토 또는 영역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영역에 대한 분명한 앎” 이란 바로 마음챙김의 네 가지 대상의 수행을 뜻합니다.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거나, 앞 또는 뒤를 보거나, 또는 옆을 보거나, 위빠싸나 수행을 해야합니다. 항상 위빠싸나 수행을 함으로서, 수행자는 영역, 그 자신의 영토에 산다고 말해집니다. “영역에 대한 분명한 앎” 이란 바로 마음챙김의 네 가지 대상의 수행을 뜻합니다. “영역에 대한 분명한 앎” 이란 바로 위빠싸나 수행을 뜻합니다.     


“영역에 대한 분명한 앎”과 어떻게 위빠싸나 수행을 해야 하나에 대하여, 주석서는 네 종류의 비구를 말합니다. 첫째는 탁발을 나갈 때 수행을 마을로 지니고 가나 사찰로 돌아오면서 수행을 지니지 않는 비구입니다. 두 번째는 수행을 지니지 않고 마을로 가나 마을에서 올 때 수행을 지니고 오는 비구입니다. 세 번째는 가장 나쁜 것으로 마을로 수행을 지니고 않고 가고 마을에서 사찰로도 수행을 지니지 않고 돌아오는 비구입니다. 그는 수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마을로 수행을 가져가고 그것을 사찰로 온전하게 가져오는 비구입니다.


그래서, 탁발을 나갈 때 수행을 마을로 지니고 가나 사찰로 돌아오면서 수행을 지니지 않는 첫째 비구는 수행을 하는 사람일수 있습니다. 그는 경행과 좌선을 하면서 해가 떠 있는 온종일 수행합니다. 그는 또한 밤, 즉 밤의 두개의 경(更--야간을 세 등분한 것의 하나, watch),에도 수행합니다. 비구들은 밤을 셋의 경(更)으로 나눕니다. 첫째와 셋째 경 동안, 비구들은 위빠싸나 수행을 하고; 두 번째 경 동안, 한밤중, 에만 쉽니다. 이렇게 비구들은 해가 떠있는 온종일 과 밤의 두개의 경 동안 위빠싸나 수행을 합니다.


이 (첫째)비구는 해가 떠있는 온종일과 밤의 두개의 경 동안 위빠싸나 수행을 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사찰에서 해야될 것들, 즉 숙소를 깨끗이 하고, 사찰을 청소하고, 물을 나르는 것 등을 합니다. 그는 이모든 것을 마음 챙겨서 하고 그리고, 얼마동안 좌선을 한 후에, 탁발하기 위하여 마을로 갑니다. 마을로 갈 때, 그는 수행을 지니고 갑니다. 그것은 그가 “걸음, 걸음, 걸음,” 또는 “한 걸음하고, 또 걸음하고,” 또는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하면서 마음챙김 수행을 한다는 뜻입니다. 마을에 도착한 후 그는 집안에서 음식 공양을 받겠느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음식을 먹든지 또는 그것을 그의 주발에 넣어 사찰로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마을로부터 오는 길에, 그는 어떤 젊은 비구들 또는 사미들을 만날 수 있고 수행자는 그에게 음식공양을 한 사람에 대하여 질문할 것입니다. “그는 친척이냐?” 등등. 비구는 그들에게 말을 해야합니다. 그는 그에게 음식공양을 한 사람에 대하여 좋게 말해야합니다. 그가 사찰로 돌아 올 때, 그는 수행을 지니지 못합니다. 그는 젊은 비구들과 사미들과 이야기하기 위하여 그것을 포기해야합니다. 그러나, 사찰에 도착한 후에는, 그는 다시 위빠싸나 수행을 합니다. 그는 수행을 지니고 마을로 가나 사찰로 돌아오면서 그것을 지니지 않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 비구는 수행을 지니지 않고 마을로 가나 돌아올 때 수행을 지니고 오는 비구입니다.  그도 또한 해가 떠있는 온종일과 밤의 두개의 경 동안 위빠싸나 수행을 하는 수행자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사찰에서 해야될 것들을 합니다. 그후에, 그는 얼마동안 좌선을 하고, 그리고 그의 수행이 끝난 후에, 탁발하기 위하여 마을로 갑니다. 그는 아주 좋은 소화력을 가졌습니다. 아침에, 그의 위는 비어있어서 소화를 돕는 열(fire) 또는 소화를 돕는 액(juices)이 그의 위의 내면을 공격합니다. 그가 그의 위안에 약간의 열 또는 약간의 뜨거움을 느끼면, 그는 위빠싸나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의 마음을 대상에 머무르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위 에 열이 있고 그는 땀을 흘릴지도 모르고 또 어지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가 공양을 받으러 마을에 가는 동안, 그는 수행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는 바로 수행을 포기하고, 아마도, 마을로 빨리 갑니다.


그는 어떤 음식, 쌀로 된 죽 같은 것, 을 받은 후에, 마을에 있는 비구들이 앉는 넓은 방에 도착해서 음식을 좀 먹을 지도 모릅니다. 먹었으니, 그의 소화를 돕는 액은 위의 내면대신 음식을 지금 공격합니다. 그는 평정을 이루고 위빠싸나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을 때, 집중수행 동안 하는 것처럼, 먹는 행위에 관련되는 모든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그는 마음챙김 하면서 음식을 먹습니다. 지금 그는 그의 위에 대하여 아주 만족하고 수행의 대상에 더 쉽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수행을 하면서 먹고 수행을 지니고 사찰로 갑니다.


많은 비구들이 먹는 동안 깨달음을 체험했다고 주석서에 써있습니다; 수행자는 음식을 소비하는 동안 마음챙김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집중수행 동안, 공양시간은 수행하는 시간입니다. 공양 중에도 마음챙김 수행을 하라는 가르침들을 받습니다. 이 가르침은 주석서에 있습니다.


주석서에 말한 세 번째 비구는 조심성 없이 삽니다. 그는 수행에 대한 바람도 흥미도 없습니다. 그는 위빠싸나 수행 같은 것이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그는 단지 먹고, 이야기하고 일반 사람과 어울립니다. 이러한 비구는 수행을 지니지 않고 마을로 가고, 탁발을 모으고, 수행을 지니지 않고 사찰로 돌아옵니다. 온종일과 온밤 그는 수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는 위빠싸나 수행을 해야하는 책임을 져버렸거나 위빠싸나 수행에 대한 흥미를 잃은 비구입니다. 비구는 이렇게 행동하지 말아야합니다.


네 번째가 가장 좋은 비구입니다. 그는 마을로 수행을 가져가고 수행과 함께 마을로부터 돌아옵니다. 그는 그의 마음에 수행을 위한 능력을 양성했습니다. 그는 일찍 일어나서 얼마동안 좌선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수행하면서 마을로 가고, 수행하면서 탁발을 모으고, 수행하면서 사찰로 돌아옵니다. 그는 해가 떠있는 온종일과 밤의 두개의 경 동안 위빠싸나 수행을 합니다. 이러한 비구는 주석서에서 말한 네 종류의 비구들 중에서 가장 좋습니다. 그는 마을로 수행을 가져가고 다시 사찰로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그는 항상 수행합니다. 집중수행 때, 수행자는 이 비구처럼 항상 수행 수행을 해야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모든 순간 내내 부지런히 수행을 계속하십시오.


몇 세기 전에는, 위빠싸나 수행을 하면서 마을로 가고 사찰로 돌아오는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삼십, 사십 또는 더 많은 비구들이 함께 살며 위빠싸나 수행 했습니다. 그들이 만났을 때, 수행자는 진지하게 위빠싸나 수행하자고 합의했습니다. 수행자는 그들 자신에게 타이르기를,“우리가 비구가 된 것은 채권자에게 시달리거나 또는 왕의 어떤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며, 또한 생계를 위한 벌이를 못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비구가 됐다 왜냐하면 윤회로부터, 많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위빠싸나 수행을 해야한다.”


수행자는 위빠싸나 수행하기로 결정했고 정신적 번뇌가 일어나자마자 그것들을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이 걷는 동안 정신적 번뇌가 일어났을 때, 수행자는 바로 걷는 과정에서 그것을 없애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다른 자세들에 넘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안 했습니다. 이들 비구들은 이와 같은 계율을 실천했습니다. 비구들이 온전하지 않은 생각 또는 그들 마음 안의 번뇌를 인지했을 때, 수행자는 걸음으로서 그것을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수행자는 멈추었습니다. 그들이 멈추면, 그들 뒤의 다른 비구들도 역시 멈추었습니다. 


예그리나   08-11-17 13:05
수행의 향기가 날 수 있도록 항상 수행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고라니   10-06-19 20:12
탐,진,치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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