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글쓴이 : 마을지기     날짜 : 09-06-25 06:05     조회 : 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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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체험기 이 명희

2005년 11월, 지인으로부터 호두마을을 추천 받고 ‘주말수행’을 신청 해 놓은 금요일, 나는 용산역으로 나가 천안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오후 늦가을 햇살을 받으며 달리던 기차가 서울을 벗어나고 부터는 가뿐하고

홀가분한 마음과 함께 처음으로 수행프로그램에 참여 한다는 호기심 너머로는 설레임과 기대가 온 몸으로 번져왔다

그리고 천안역에서 내려 광덕사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가면서 처음 ‘호두마을’의 이정표를 만난 반가움이란....

그 때 약도 한 장과 배낭하나 달랑 메고 나선 나에게 따뜻하게 내 보이던 그 푯말은 지금도 나에겐 여전히 반가움이고 설레임이다.

주말수행의 첫날은 우선 처음 접하는 용어에 어리둥절했다

위빠사나, 사마타, 알아차림, 좌선, 경행 등등......

그러나 이 생소하기만 했던 이름들이 무명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하는 용어인 줄이야

나는 수행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좌선을 시작하면서도 처음부터 자세에 치중하거나 집중하려고 결코 애쓰지 않는다.

자세보다 편안함에 우선을 두고, 또 집중보다는 마음의 평온에 우선을 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틈실한 자세가 이루어지기 시작 한다.

몸이 내 몸이 아닌, 피사체처럼 여기며 그것을 대상으로 보는 순간, 몸의 이완은 동시에 이루어지며 순간 일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경직되어 지내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다리를 접고 엉덩이를 쭉 빼고 최대한 넓혀주면 골반이 열리는 느낌이 들고

회음부위가 편안히 바닥에 닿으면서 안착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음으로 척추를 고르며 서서히 내려놓으면서 앞가슴을 활짝 펴면 자연히 턱이 당겨졌다.

그리고 다리의 오른쪽 닿음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왼쪽의 닿음을, 또 엉덩이의 왼쪽을, 오른 쪽을, 그리고 척추, 머리등을 대상으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아차림 한다.

그렇게 현재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나면 마음은 어느새 평온하다.

깨어있음의 시작이리라.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고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이란 손님으로 알아차릴 뿐 그대로 두고 다시 호흡 관찰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날숨은 잘 보이지만 들숨이 잘 보이지 않다가 점점 집중이 되면서 코밑으로 들고나는 숨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 했는데 의식을 밑으로 내리면 자연스레 하단전으로 내려갔다.

들숨 알아차림, 날숨 알아차림, 알아차림, 알아차림...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는 것이 집중 아닐까 한다.

집중이 지속되면 호흡의 흐름을 알게 되고, 들숨의 형성과 날숨의 소멸을 시작부터 끝까지 볼 수 있게 되고서는 호흡의 들고 난 자리도 보였다. 의식이 또렷하고 명료해 질수록 의식은 확장되고 몸도 팽창된 느낌이 들면서 호흡이 몸 전체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고, 정수리로부터 기운이 들어와 몸속을 채웠다가 나가는 것은 마치 바닷물이 밀물로 몰려왔다간 썰물로 빠져나가는 듯 한 느낌이었다.

썰물이 파도로 밀려나가면 바다는 고요하고 깊다.

좌선 중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자 하는 충동 저편에는 그럴싸한 핑계가 벌써 꾸며져 있었다.

그 비겁을 두고 자신의 근기를 자책하기가 한 두 번이던가?

그렇게 채찍질하고 다그치던 어느 날, 이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리라며 통증과 당당히 맞서 봤다.

그렇게 두어 번 땀에 흠뻑 젖도록 맞닥뜨리고 나니 통증이라는 녀석의 본질이 파악 됐다.

통증이 있는 곳엔 항상 의식이 함께 달라붙어 고통을 일으키고 있었다.

몸을 대상으로 확실하게 여기지 못함이요, 몸과 구별된 의식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요즈음도 본색을 들킨 통증이 꺾인 기세를 하고도 느슨한 틈만 있으면 다시 오지만, 그때마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이 그저 대상으로 지켜만 보고 있으면 통증은 제풀에 소멸 되며 마음의 동요까지 거두어 간다.

2주전 치과에서 치료를 받으며 느낀 통증도 본질이 같음을 알고부터는 놀랍도록

고통이 아주 가벼웠다.

알아차림이리라

처음 호두마을에 갔을 때만 해도 나는 사마다 수행에만 치우쳐있었다

집중하고 있으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 순간과

현상을 즐기며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빛이 보이던 현상, 몸이 없어진 느낌, 미미세세 해 가던 숨조차 사라져버려 어리둥절해가지고 사라진 숨을 찾던 일 등....

지금 생각하면 과정 중에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내심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중 주지 능혜 스님과의 인터뷰에서 사마타 수행만으로는 완전한 공부를 이룰 수 없으니 위빠사나 수행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위빠사나쪽에 치중하면서 매순간의 알아차림에 대하여 수행하기 시작했다.

경행은 내게 알아차림의 힘을 키우는 커다란 계기였다

처음 경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경행에 대한 확실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오랜 좌선 후의 가벼운 수행변화 쯤으로 여겼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경행이 회를 거듭 할수록 사마타의 몰입과는 전혀 다른, 변화하는 매순간을 알아차림 하는 지혜의 계발임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처음 왼발을 듦, 나아감, 내려놓음, 오른발을 듦, 나아감, 내려놓음의 인식은 나에게는 단순한 감지에 불과했다. 아마는 행선 이전에 행선을 단순한 수행변화 쯤으로 생각했던 무명의 소치이리라

그러나 차츰 발의 느낌이 구분되어 느껴지기 시작 했다

왼발의 뒤꿈치 들림을 알고 발바닥이 일어남, 뗌, 발의 나아감 발바닥의 닿음, 딛음 을 또 오른발의.....

그러나 아무리해도 행선의 리듬이 일정하지 못하고, 몸의 균형 또한 자주 흔들려 알아차림이 자꾸 깨어지곤 했다.

호두마을은 겨울에 유난히도 눈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재작년엔 새해 첫날부터 대중교통까지 마비되어 있었다

천안역에서 출발한 콜택시는 제시간보다 두 배를 더 운행하고 나서야 경내 어귀에 나를 내려놓았다.

차에서 내려 배낭을 추스르며 올려다 본 호두마을은 흰 눈에 덮인 채 호젓하고 초연하다.

반가이 맞을 것도 없이, 거부할 것도 없이 거기 그렇게 항상 넉넉함으로 웃고

있었다.

어느새 경내로 가는 어귀는 차마 밟고 가기조차 민망스럽도록 말끔하게 비질되어 있었다. 한 두 번의 비질이 아니리라. 합장하고 걸으며 또 합장 한다

마침 점심 공양시간 이어서 사무처에 접수하고 공양 간으로 가니 거기엔 생각보다 많은 도반들이 조용히 앉아 점심 공양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움직임 속에서도 지극히 절제되어있는 분위기에 절로 마음이 여며지며 공손해 진다

밖에 폭설이 내리고 길이 끊겨있어도 아랑곳없는 호두마을은 이제 세속과는 멀어있었다.

공양주와 눈인사를 나누며 잠깐 동안 진정한 묵언이란 무엇일까를 생각 한다.

호두마을에서의 공양은 내게 호사다

천연재료만 쓴 음식의 담백하고 정갈함은 언제고 내게 과분함이어서 그 정성에

다시 한 번 합장을 한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천천히 2층 대법당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공양시간이라 비어있을 것으로 여겼던 법당 안에는 거사 한분이 좌선에 들어 있었다. 미동도 없음이 마치 목각 같다.

점심공양도 잊은 저 삼매의 경지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좌선에 행여 방해될라 조심스레 부처님께 삼배 올리고 서서히 경행을 시작하면서 알아차림 하기 시작 했다

왼발의 움직임을, 오른발의 움직임을, 발바닥의 느낌을, 움직임의 느낌을....

그렇게 서너 번 법당을 오가는 사이에 법당 창밖으론 어느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포근하게 내리는 눈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는 어느새 창 쪽을 향하여 보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나도 모르게 빨라진 나의 보행을 알게 됐고, 그것은 내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려하는 의도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멈춰 섰다. 알아차림의 분명함은 각인처럼 또렷했다

그 알아차림은 다름 아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도’의 내재였다

이미 앞서가 있는 의도를 몸이 따르려 하니 다리가 급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억누르며 느린 걸음으로만 걷고자 했으니 지금까지 억지를 부려왔던 셈 이다.

용씀 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차림하고 다시 보행을 시작해 보았더니 경행은 놀라워졌다.

몸의 균형과 행선의 리듬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의도를 알아차림 할 줄 아는 첫 발 이었다.

그리고 멈춰 서고자하는 의도를 알게 되고, 돌고자 함, 내딛고자 함의 의도를 미리 알아차리게 되면서, 행선은 더욱 느려지고 알아차림은 그만큼 선명해 지면서

경행에 할애 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세분 되면서 느낌 또한 더욱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행이 깊어질수록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반향도 보이기 시작했고, 보행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호흡까지도 보이기 시작 했다.

발을 떼면서 시작하는 들숨의 성향, 나아가면서 느끼는 바람의 요소, 닿음과 함께하는 날숨의 시작, 딛으면서 알게 되는 날숨의 끝과 이어지는 견고함, 그리고 양발 닿음에서의 평온함, 들숨과 날숨 사이의 평화.......

경행 후에 좌선을 하면 훨씬 쉽게 집중이 됐고, 알아차림의 힘도 더욱 커졌다

아마 이것이 능혜스님이 말씀하신 사마타의 집중하는 힘과 위빠사나의 지혜를 닦는

정혜쌍수의 수행법 아닐까 한다.

내가 수행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몇 년 전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던 때의 일이다.

커다란 충격으로 나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눈에선 아지랑이 같은 것이 가물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어지럼증이 생기며 그대로 픽픽 쓰러져 운신조차 할 수 없기가 일쑤였다

그것은 분명 마음이 빚어낸 병임이 틀림없음을 알면서도 도무지 어찌할 방도조차 없었다.

그래, 털자, 내려놓고 비워야지.........

그리고 매일매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전부인 양 무작정 오르고 내렸다.

그렇게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요 또한 돌파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를 오르내리던 어느 날, 강화도 마니산의 등선을 타고 산을 오르는데 멀리 한강이 서해바다로 몸을 풀며 들어가 안기는 것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이었다

아, 내가 매일매일 산에 오르면서 마음을 털어야지털어야지 하면서 반대로 마음에 쌓으며 집착하고 있구나 하고 깨닫는 찰나에 내면으로부터 한 덩어리 응어리가 풀리면서 바다로 함께 흘러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마음이 한없이 편해지기 시작 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 힘겨웠던 어지럼증도, 생각으로 지어내는 마음의 병도 말끔히 사라졌다.

이 어찌 마음 한 자리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한 달에 두어 번은 호두마을에 간다.

처음에는 꼭 도서관에 가는 기분으로 다니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호두마을에서 누리는 호사가 내겐 과분할 뿐이다

지난 가을엔 유난히도 몰입이 길어지고 알아차림이 선명해져 2박3일 일정을 내서

호두마을로 향했다, 오랜만에 친정에 가던 새댁시절 심정 이었다

이틀째 되던 날도 대법당은 평일 이어서인지 한가로웠다

그리고 좌선은 깊을수록 더욱 길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일순, 나를 감싸고 있는 무엇이 여실히 보이기 시작 했다.

그것은 내면에 달라붙어있는 탐진치의 업장 이었다

바로 지금 그 순간의 알아차림은 명백하고 확고했다

가슴에도, 등에도, 정수리 끝까지 찐득찐득 찌들어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더니 서서히 가슴을 옥죄어 왔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그 옥죄어 오던 업장이 서서히 녹아 떨어져 나가는 것을 선명하게 보았고, 그 자리가 텅 비어 없어지면서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 무한한 공이 생기는(?) 현상을 보았다

그 과정은 마치 한 번의 클릭으로 순식간에 말끔히 비워낸 휴지통과 흡사했다

순간, 아, 이것이, 여기가 마음자리구나 !

온몸이 환희 심으로 일렁이면서 너무 황홀하여 눈물이 날 지경 이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와 경내를 거닐면서 기쁨을 다독이다가

능혜 스님을 찾아가 말씀 드렸더니 환하게 웃으시며 축하한다고 해 주셨다

그렇게 고구마 줄기 하나를 제대로 잡으면 줄줄이 올라오는 것 이라면서....

지난 일요일에도 나는 호두마을에 가서 호사를 누렸다

내가 오후에 도착하여 무심히 법당으로 올라갔을 때 대법당은 스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지방을 넘어서며 언뜻 놀라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췄다

대법당에서 가끔씩 수녀님들이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신선함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강하게 전해왔기 때문이다

준엄한 침묵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는 대법당 안은 이미 세속이 아니었다.

체득을 향한 치열함이 온 법당에 가득 했다.

안거에 든 선방이 아마 이와 같으리 라며 이 속에서 내가 함께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고 또한 호사인가?

그렇게 영광 속에서 시작한 수행은 어느새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있었다.

대상으로 여기고 알아차림 하던 몸도 마음도 그 어느 것도 구분 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 달, 집에서 이 대상을 뚫고 들어가 온 몸으로 맞닥뜨리며 벌였던 2주 동안의 치열했던 정진의 결과이리라.

경내에서 능혜 스님을 만나 지난 2주 동안에 있었던 체험을 말씀드렸더니

축하와 격려를 거듭 해 주신다.

호두마을 앞뜰에서 스님과 마주하고 받은 5월의 오후 햇살이 유난히도 따사로웠다.

다시 법당으로 돌아와 좌선에 들고 얼마를 지났을까?

개구리 울음 소리가 요란스럽다 싶더니 자꾸 거세지기 시작 했다.

한 무리에 또 다른 무리가 합류하며 내는 울음소리는 차츰 더 거세지고 더욱 집요 해 졌다

그리고 나는 소리 들림을 알아차리고, 동요가 이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자 했다

그러나 동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자리를 걷고 일어서려는 충동만 자꾸불러 일으켰다.

일어서려는 충동에 비수를 들이댄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순간, 지금 시끄러운 것은 개구리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임을 번뜩 알아차렸다

그리고 동시에 내 마음과 개구리 소리가 서로 뒤바뀌며 구별 또한 없어졌다

오~라, 개구리 소리가 내 마음인가? 내 마음이 개구리 소리인가?

혹시 이런 것이 호접몽의 경지일런가?

법당을 내려서니 경내엔 벌써 땅거미가 드리워져 있었다.

합장 올리고 집으로 돌아선다. 정화된 몸과 마음이 한없이 가볍고 정갈하다.

그리고 거기엔, 그 정화된 몸과 마음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둠도 없었다. 빛 가림일 뿐인데 이를 두고 우리는 마치 어둠이라는 실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주차장으로 내려와 시동을 걸고 핸드폰을 켜며 문득 지금 고속도로는 막혀있지 않을까? 집에 있는 식구들이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시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디선가 은은히 풍겨오는 찔레꽃 향기에 나도 모르게 다시 차 밖으로 내려 설 때 또다시 개구리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줌마, 운전 조심 하세요~”

무모하게 표현하고, 함부로 이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외람됨에 용서를 빕니다.

제 몫을 닦아 가도록 도량을 펼쳐주시는 고문님, 주지 능혜스님 그리고 호두마을을 이끌어 가시는 관계자 분들과 도반들 고맙습니다.

모든 생명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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