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마을 위빠사나 수행체험기
  글쓴이 : 날아라자유…     날짜 : 10-07-25 16:26     조회 : 8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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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중반으로 부터 삶과 죽음의 문제로
깨어있는 절반 이상의 시간을 사유했던 기억으로 보아
아마도 전생에 불연(彿緣)이 무척 깊었는가 봅니다.
 
다만 불법을 만난것이 다소 늦어
32세라는 나이에 반야심경을 만나게 되어 불교에 입문하고
 
화두선을 홀로 공부하다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경계를 만나면서
스승을 찾아 지도를 받고,
 
토굴에서 정진하다가
생활의 부담으로 인해
송광사로 출가하여 선원을 안거하고
 
다시 토굴에서 정진하다가
예상하지 않았던 사고로
치료차 세간에 머물게 되었는데
잠깐 사이에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옛 사람 누군가의 말에
'정진 중 한 번 미끌어지면
10년이 지나야 그 전 경계가 회복되고
두 번의 미끄러짐은 20년이라야 된다'는 경책을 들었는데,

아마도 수행경계 보다도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인연이
그렇게 쉽게 조성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지금은 선(禪)을 깊이있게 공부하고자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의 석박사과정에
적을 두고 훌륭하신 교수님들께 선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동국대학교와 호두마을이
몇년전 산학협력을 맺어
 
호두마을의 수행과정을 충실히 이수하면
선수과목에 대한 학점을 대체할 수 있다는
대학 학점 규정에 의하여
 
선(禪) 실수(實修)도 하고
학점도 이수하자는 생각과 함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위빠사나 수행도량인 호두마을에 방문하여
 
능혜(能慧)스님의 회상(會上)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호두마을의 수행에
참여하기 5일전부터 사무실을 정리하느라
가볍지 않은 짐을 하루 6시간 이상 분주하게 날랐고
 
호주마을 입소전날은
새벽 2시반 까지 짐을 나른 상태라
 
거의 몸살 상태로 입소하게 된 것이
결과가 좋지 않다면 후회하게 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실제 수행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 최상의 상태에 있을 때 시작을 해야만
 
마음의 예리함이
빛을 발하는 것이 옳은 도리(道理)인데
파김치가 된 심신의 상태로,
 
거기다가 입산(入山)하는 날
엄청난 폭우로 온 몸이 흠뻑 젖었으니
 
'악(惡)은 악을 부른다'는
옛말이 아주 틀린것만은 아닌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6박 7일 수행을 하기로 하고 방 배정을 받으니
폭우로 인해서 인지 개인방을 배정받았습니다
 
(착하고 아름답게 살다보니 이런 행운이 있군요 ...)
 
첫날 저녁 능혜스님께서 첫 법문을 하셨습니다.

스님 자신의 수행이력을 간략히 거론하시고,
위빠사나 수행방법의 요지(要指)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좌선시 아나파나사티를 제 1 대상으로 하고
일어나는 생각, 느낌, 감촉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며,
 
생각이 일어날 때는 생각을 상세히 분류하지 말고
"생각, 생각, 생각"이라고 세번을 생각으로 말하고
덩어리로서 관찰하라고 일러 주셨는데,
 
퍼득 떠오르는 생각에 아주 훌륭한 대처법이라고
마음안에서 맞장구가 일어났습니다.
 
대개 생각이 일어날 때 이것을 자세히 보려하면
생각이 찰라에 변하여 계속 앞의 생각을 인연으로
 
일반적으로 지칠 때 까지
끝없는 생각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은 데
 
스님 말씀과 같이 생각을 하나 하나 분류하지 않고
덩어리로 묶어서 상대하게 되면 처리하기가 쉽다는 것은
 
경험한 바가 있어, 그 말씀을 하실 때 찰라적으로
능혜스님의 수행법은 실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본다"던가,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오류라고 하시면서
 
'보는 작용이 있고'
'일어나는 생각이 있다'고 여겨야
바른 견해(正見)라고 설명해 주시는데
 
그 말에 내 안에 환희심이 생기는 건 
 
요즘 말로 또 뭥미?
 
다만 괴로운 상념이 일어날 때
감당하기 어려우면 의식의 알아차림 대상을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집중하는 것도
한 가지 방편이라는 말씀도
강한 동감(同感)이 있었으며,
 
경행시에는 걷는 것을 관하는 것인데
내가 걷는 것이 아니고 걸으려는 의도를 알아채고,
 
왼발을 들때의 느낌, 감각을 알아채고,
발을 이동할 때의 느낌, 감각,
 
발을 내려 놓을 때의 느낌, 감각,
선방 바닥과 발바닥의 접촉느낌, 감각,
접촉시의 부드러움과 거칠음,
 
발에 느껴지는 바닥의 온도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채고,
다른 발로 동작을 할 때도
 
무릎아래의 일어나고 관찰되는 모든 것을
왜곡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채는 것이 경행이라고 하셨습니다.
 
첫 저녁 정진이 시작되어
좌복에 앉아 몸을 좌우로 한 두번 살짝 흔들고,
 
앞으로 등과 머리를 젖혔다가
코브라가 몸을 펴고 머리를 쭈욱 끌어올리듯
이 몸을 펴고 어깨를 살짝 떨어뜨려
긴장을 푼 상태로 두 눈을 내려감고
복부부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지켜보는데 ...
 
 
 
그곳에 고통이 있었다.
 

어께에 통증이 있었고,
허리에 묵직한 결림과
뻐근한 통증의 덩어리가 있었으며,
 
무릎에
5일간 들었다 놓았던 짐에 대한 업이
무릎 쑤심이라는 업과(業果)로
보고서를 들이 밀고 있었으며,
 
골반과 엉치 뼈 또한
주위를 받치는 인대와 근육들이
예리함과 묵직한 뻐근함이 교차하여
고통 백화점이라는 상태로 자신을 어필하고 있었습니다.
 
총체적으로 말하건데
거기에 쑤심과 결림, 그리고 뻐근함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상태가
육체에 의존한 노동으로 일관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노동 후의 상태이리라.
 
이러한 것을 평범인이 직관하기가 괴로우므로
한 잔 술에 자신을 던지고 감각과 정신의 몽롱함으로
하룻 밤 자신을 속이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이날은 수행의 첫날이므로
결코 어영부영, 혹은 아무렇게나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세상사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마음먹는대로 풀려나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된 인연이 지대할 것이므로
우선은 몸과 마음에 각인을 시켜야 했습니다.
 
"내가 도를 이루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3000여년전 보리수하에 앉으시면서
석가모니께서 하셨던 말씀이기도 했지만
 
, 정진하기전 속으로 이를 뽀득하고 물면서
 
"내가 도를 이루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하는 결심을 가지고 자리에 앉으면
 
나 자신의 몸과 마음자세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공기의 에너지가 일변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조금, 아주 쪼금 독하게 앉아 줍니다.

그렇게 되면 몸과 마음이 자기 스스로 알아서
"아! 이 인간이 또 다시 시작하는 구나!"
하고는 참선을 할 각오를 한다는 것입니다.
 
토굴에서 날마다 앉을 때마다,
비록 30분 밖에 못 앉아 있을 지라도
앉을 때 마다 위와 같은 결심과
 
다음과 같은 발원을 합니다.
 
"내가 도를 얻으면
인연있는 모든 중생을 반드시 제도하겠다!"라는
 
두 가지의 결심을 하면서
자리에 좌정하면 잡념이 상당히 덜 생기고,
 
뿐만 아니라 앉아 있기가 조금 괴롭더라도
되는대로 앉았다 일어나면서 정진하는 것 보다는
느낌상으로 5분은 더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시간상으로 5분은
별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선정에 머물렀을 때의 5분은
완전히 평등한 시간계산으로 환산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시간이 되는 것은
오래 앉아서 큰 목적을 가지고 공부해 본 분은 누구나 경험하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만이 아는 것이 아니고 번뇌도 압니다.
 
알아채는 마음은 억지로 말하자면 좀 큰 마음이고
번뇌는 작은 마음이기 때문에
 
위와 같이 굳은 결심을 다지고 앉으면
번뇌 망상이 대폭 줄게 됩니다.
 
자리에 앉을 때도 경망스러울 수가 없으며,
또한 한 번 앉으면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결심과 발원의 힘이 그러하다는 것은
꼭 장기간에 나타나는 것 만은 아니고
이렇게 짧은 시간상에서도 뚜렸하게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쨌든 그렇게 앉으니 처처(處處)가 쑤심이요
보는 곳(觀處)마다 결림이라...
 
허리를 움직여도 통증이요,
고개를 돌려도 통증이라 ...
 
내면에서 비명소리가 울려나옵니다.

"야! 이 자식아 좀 쉬어라."

"몸살나면 너 수행이고 뭐고 드러눕는다!"
 
이런 외침이 몇 분 간격으로
협박성 외침(격렬한 외침)과

회유성 외침
(온건한 속삭임 : 며칠 푹 쉬고 좀 나은 상태에서
제대로 정진하라는 달콤한 속삭임)이 힘들다고 여겨질 때마다,
 
지쳐서 집중이 잘 안될 때 마다
5분 ~ 20분 간격으로 반복된다.
 
이런것이 알아차려 질 때마다
내면에 부정적인 일렁임이 점차 증폭되니
선가(禪家)의 비도(秘刀)를 꺼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가비도(禪家秘刀)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맹렬한 집중입니다.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에 알아챔을 완전 밀착시킵니다.

0.0001초도 틈이 없도록
완전 밀착하여 잠시도 좌우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다행이 배는 아래쪽에 위치하고
상념이 출몰하는 주 영역은 아무래도 머리의 전두엽쪽이니
위에서 어필하는 모든 감각을 무시하고
복부의 변화만을 뚫어지게 연속적으로 알아챕니다.
 
그러니 머리속에서 떠들거나
상념이 나타나는 것이 똥덩어리 만하든

아니면 계란 크기 만하든
스스로 "나 여기있다!" "봐라!"라고 하듯 나타났다가
 
오로지 아랫배만 보니
점차 페이드 아웃(A fade out:점차 사라짐)되는
현상이 아래를 보면서도 알게됩니다.
 
계속적으로 지속하니
호흡할 때 생성된 에너지에 의해
몸이 알아서 스트레칭을 합니다.
 
가장 자주 반복되는 현상이
손가락을 깎지껴서 머리위로 올리기,
 
다리 뻗고 호흡에 맞춰
허벅지 근육과 아킬레스건 번갈아 스트레칭 하기,
 
무릅잡고 몸통 왼쪽으로 뽀사지도록 돌리고 버티기(허리 스트레칭?),
반대로 몸통 왕창 돌리기 ...
 
등등의 다양한 포즈를 취하면서
이 근육 저 근육, 이 인대 저 인대를
맘대로 늘리고 꺾고, 펴고, 굽히고를
수시로 자세를 바꿔가면서 진행하였다.
 
삼가 옆자리에 앉으셨던 성스러운 도반님께 참회하나이다...(-_-)(__)(-_-)
 
잡념은 많이 잦아들고
고요함이 함께한 가운데
어느새 시간은 10시가 되었는지
몸에서 비상벨이 울립니다.
 
가서 자라고 ...
 
숙소에 들어서 세수도 못하고
그대로 3초만에 잠으로 떨어지고
 
휴대폰 알람으로 새벽에 일어나
선당을 올라가 앉으니
 
"어렵쇼!" 다른 곳은 많이 풀렸는데
좌선에 필요한 근육들이 퉁퉁 부어 있습니다.
 
주로 어께, 무릎,
가슴 뒷편의 등 근육 등 ...
 
참으로 몇년만에 작정하고 정좌하니
사용않던 근육들이 피로를 호소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어쨋든 다시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알아챔을 집중하니
한참을 쑤시고 결리다가 조금 나을 만 하니 아침 공양시간이다.
 
공양간을 가면서 걸으니 발의 느낌보다는 배의 느낌이 더욱 강렬하여
배의 일몰과 발의 감촉이 투명한 2층집 보는 듯이 복합적으로 알아차려진다.
 
점심 후 스님과의 인터뷰시간에 여쭤보니
가장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라고 결택을 해 주신다.
 
화두선을 공부할 때는
인터뷰라는 것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와같이 자신의 정진과
주변에 대한 의심을 문의하고
나름대로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니
이 자리에 참석하신 선객(禪客)들은 복 터진줄 아셔야 합니다.
 
경전을 읽어서 해설해 주는 곳은
이곳저곳 애를 쓰면 얻어 들을 수 있으나,
 
실제 선을 실행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문답은
애를써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둘 째날도 앞과 같이 행하니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우나
어깨와 등허리가 너무나 아퍼서
 
적당히 포행을 하면서
(경행이 아닌 포행인 점에 대해
능혜스님께 참회합니다...)
 
"그래도 육신아 네가 고생이 많다" 하면서
몸을 달래 준, 다소는 릴랙스를 지향한 저녁이었습니다.
 
다음날은 그래도 몸 상태가 몸살은 거의 벗어 났고
어제 보다는 비교적 몸이 가벼워 진것을 느껴서
오늘은 힘좀 써야 겠다고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여전히 배의 일현일몰
(一顯一沒:한 번은 높아지고 한 번은 떨어짐)에 집중하고
 
좌선을 주로하니
여전히 육체는 스트레칭성 체조를 진행하였습니다.
 
저녁 공양 후 정진시간에
아마도 지속적인 비로 인하여
선당에 보일러를 계속 틀어 놓았는 지
꽤 더운 느낌이었습니다만
 
저로서는 근육과 인대 등이
피로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쩌면 행운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실로 이곳 도반들의 정진에 대한 열의는
정진을 업으로 하는 프로들이 모인
조계종의 여느 선방 못지 않은 정진 열의가 있다고 여겨졌으며
(제가 많은 선방을 다닌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해들은 바로 올리는 글입니다.
 
그러므로 실제 용맹정진 선방
-24시간 철야 정진-등은 제외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육신이 허락하는 한까지
정진하는 모습은 보는 그대로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당내에서는 대충 정진하는 분은 보질 못하였습니다.
 
고맙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정진이 안되면
정진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도록 쉬는
아름다운 도반이 있었기에 다들 열심히 정진하신것 같습니다.
 
어쨋든 몸도 다소 풀리고
선당도 후끈하게 뜨거워서
무릎이나 허리 등도 덜 결리고 해서
 
"오늘은 내 기필코 철야를 하리라!"하는 마음으로
작정하고 저녁시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새벽녁까지
일관되게 정진을 하니 경계가 한 번 변합니다.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하는
힘이 보다 강렬해지면서
 
고요함과 함께 덤덤함 혹은 평온함이
몸과 마음에 충만해 지면서
 
상념이 일어날 때 그것을 알아채려고
(일어날 때의 느낌이 있으므로 금방 알아챔)
 
바로 보면
이미 마음의 눈이 일어난 당처에 이르면서
 
일어난 상념이 사라지는 것을 알아챘으며,
 
그렇게 되니
상념이 일어난 찰라에 사라지는 것을
연속적으로 알게 됩니다.
 
일어난 상념을 보려하면
이미 사라지고 다시 뭔가가 일어나서 보려하면
시선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모습을 알게됩니다.
 
그러다가 더 나아가니
보지 않고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찰라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고요함은 더욱 깊어지고
평온함과 굳건함도 더욱 두터워 집니다.
 
배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습도 어느새 없어져
그냥 없는 그 자체만 있는 것을
분명하고 더욱 뚜렷하게 알아차리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럴때 알아차림을 그만 두면
어두운 혼침으로 가게되는 바
 
반복적으로 일정시간(혼자 생각으로만)
일정간격으로 알아차림을 합니다.
 
이 때는 잡념, 망상, 느낌, 감촉 등이 변화가 없기 때문에
 
소위 무자미지지(無滋味之地)
즉 아무 맛 없는 경계이기 때문에
지루함, 답답함 등이 드러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에서
알아차림을 거두지 않고 마음의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봅니다.
 
그렇게 계속하니
마치 맑고 투명한 물속에 포옥 잠긴 듯한 상태에서
바깥의 새소리도 아득하게 들리고
 
어떤 소리든지 천리밖의 소리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다가 내 앞에 보이는 스크린의 폭이 작아지면서
상념이나 감촉이 없다는 그 상태만 있습니다.
 
이렇게 얼마동안인지 모르지만 있다가
급격히 몸의 여러곳의 통증이 느껴지면서
그 고요한 곳으로 부터 빠르게 현실감각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 저기 안 쑤신 곳이 없었으나,
정신의 고요함과 선명함은
세간에 지낼 때의 경계는 아니었습니다.
 
점심공양 후 인터뷰 때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은근히 기뻐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쩔 수 없는 수행자 이신가 봅니다.
 
그 경계 이후로는
시간의 축에 변화가 생겨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릅니다.
 
그저 잠깐 있으면 아침,
또 잠깐 있으면 점심,
또 어느새 보면 다시 새벽 ...
 
먼저 경험했던 그 경계가 
다시 진입되는 것도 아니고
 
일순간의 강렬한 집중으로 인해
아마도 경계를 잠시 맛을 본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것 또한 그런줄 알고
그저 앉을 때도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
 
걸을 때도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
-일어나고 사라짐이 너무 뚜렸하여
앉거나 걷거나 자신이 의식을 거두더라도 어느정도 느낌이 있습니다.-
 
누울 때도 일어나고 사라짐,
잠속에서는 일어나고 사라짐은 없고
상념없는 고요하고 아늑한 상태가 있습니다.
 
물론 육체가
코를 씩씩거리며 자고 있는 상태를
아는 것은 알고 있는 겁니다. ...
 
고요함에서 기쁨과 평화가 번져 나오니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지고
(고요한 마음에 파문이 일기 때문)
 
그냥 고요함 속에서 앉아있고,
고요함 속에서 잠시 걷고,
고요함 속에서 잠시 눕고,
고요함 속에서 그냥 자고 ...
 
입산전 있었던 모든 피로는 사라졌으며
근육결림, 무릎통증(아주 조금 있음),
 
허리결림, 등근육 뻐근함 등도
대부분 미미한 상태로 되었습니다.
 
너무 들 뜸도 없고
너무 가라앉음도 없으며,
 
너무 즐거운 것도 없고,
너무 무거운 것도 아닌
 
그저 고요하고 안락한 상태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니
 
내 안에서 평화가 스스로 있다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됩니다.
 
이것으로 체험기를 올리고
다만 아쉬운 점은 경행에 대해
면밀한 관찰을 이루지 못한 점입니다.
 
호두마을 입실전 몸 상태가 최적이었다면
좌선 뿐 아니라 경행 또한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을 텐데,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만 대상으로 하게되어
위빠사나가 아닌 사마타를 익힌 것이 라고 여겨지며
 
다만 명확히 할 수 있는 것은
알아차림을 분명히 하였기 때문에
사마타가 아닌 위빠사나 였음을 밝힙니다.
 
스스로 생각키에
알아차림 없는 사마타는 무기(無記)요,
고요함 없는 위빠사나는 산란이라 여겨집니다.
 
이 호두마을과 인연있는
모든 정신차려진 수행자들과
 
호두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조차도
이 인연으로 인하여 윤회를 해탈하고
 
해탈한 경험을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누는
법보시가 시방(十方)세계에 두루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능혜스님 법체 강건하시기를 ...
 
 

날아라자유…   10-10-10 11:49
"위빠사나 수행방법의 요지(要指)를 말씀해 주셨습니다"의 내용 중
'요지(要指)'라는 낱말의 한자를  '요지(要旨)'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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