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마을 초보수행 체험기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6-09-28 20:46     조회 : 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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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올려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호두마을 다녀온 이후 내 경험을 정말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어 글로 옮겨 본 것입니다. 호두마을 홈페이지에 이런 초보 수행기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되지만 기왕에 끄적거려 놓은 글이니 선배 도반들의 좋은 가르침이라도 얻어보자는 욕심(?)으로 올려봅니다.

<호두마을 수행기-1>

좌선과 행선이라, 내가 그게 무언지 알 연유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저 아주 오래전부터 내 가슴을 짓눌러오던 복잡하고 무거운 그 무엇인가를 집어 던져 보자고 무작정 나서 본 행보였다. 위빠사나가 무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가부좌를 틀고 줄지어 앉아있는 모습이나 무표정하게 정신나간 얼굴로 걸음마를 연습하고 있던 처음 광경은 사실 좀 우스꽝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처음 호두마을에 들어섰을 때 마당을 천천히 가로질러 걸어가던 어느 여자분의 걸음걸이는 마치 계요병원(우리 동네에 있는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낯익게 보았던 걸음걸이 이다 싶었다. 아 그러나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서 나는 더 느린 걸음걸이로 걷고 있었다. 나를 맞아준 호두마을의 실무자는 몇가지를 재빠르게 설명해주고 나는 조용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예," 대답하며 물러나왔다.

나의 이러한 긴가민가 하는 수행의 분위기는 둘째날 부터 서서히 이상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분명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설픈 호흡관찰과 느낌관찰을 하는 동안 몸의 이상한 느낌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좌선을 할 때에 마치 내가 모든 대상으로부터 단절되어 홀로 앉아 있는 듯한 느낌 (검은 물체감이랄까 주위에 아무 것도 없고 '나'라고 보이는 검은 물체 같은 것만 오롯이 느껴지는 상태)은 전에 내가 신앙생활을 몰입할 때(나는 중학교때부터 교회를 다녀온 기독교인이다) 기도중에 느꼈던 이상한 느낌 그것과 비슷한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별로 놀라운 것은 아니었는데 정작 내게 신선한 현상으로 다가온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나는 내 몸의 움직임이었다. 호흡관찰(호흡의 일어남과 사라짐, 배가 일어섬과 무너짐, 배의 표면이 아니라 내면에 집중함) 후에 자신의 몸 중에 어떤 느낌이 느껴질 때 그것을 그냥 아무런 의도나 가치개입없이 선성-善聖-1? 아마 이 한자는 맞지 않을 것이다. 나도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그냥 이런 뜻일거야 하고 넘어갔는데 아직 정확히 확인해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성'자는 性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善聖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바라볼려고 노력했었다.-하게 바라보기만 아니 조금 더 가깝게 세밀히 관찰해 보기만 하라던 가르침대로 점차 저리고 아파오기 시작한 내 오른쪽 무릎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 1. 이후에 확인한 바로는 '성성'이다.)

내 딴엔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주시' '바라봄''통찰''관찰'등 온갖 내가 아는 적당한 단어를 모두 동원해 가며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내 눈동자를 오른다리 무릎쪽으로 내려 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게 아닐 듯 싶은 생각에, '눈'이 아니라 나의 신경을 아픈 무릎에 집중하여 그 통증을 최대한 가깝게 느껴볼려고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쉽지 않은 노력-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을 얼마나 하고 있었을까 내 오른쪽 다리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그것은 고통이 가장 극심해지는 순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한번 일어나기 시작하자 연속해서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또 동시에 의심(내 스스로 자기 최면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스럽기도 한 마음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내게 일어나는 그 신비한 현상을 중도에 깨버릴 만큼 당황하거나 의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나는 그것이 순간 깨져버릴까 하여 거의 숨도 쉬지않고 그 움직임과 통증의 변화에 집중하여 바라보기를 계속해 나갔다. 무릎을 중심으로 온 다리가 마치 공중에 붕 뜨듯이 올라왔다가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고 다시 내려가기도 하고 또 저림과 통증으로 거의 감각을 느낄 수 없는 발목이 서서히 비틀어지고 일어서고 꺽이고 하기를 수차례, 또 오른 무릎을 집중공략하던 현상은 왼쪽 다리도 간간히 일으켜세우고 때로 양 무릎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였다.(신기한 것은 왼쪽 다리는 거의 아프지 않고 나는 오른쪽 다리만 집중적으로 초토화되었다.) 이게 뭘까 하고 생각했지만 쉽게 깨달을 수 없었고 그렇지만 위빠사나 수행자 일반에게 모두 있는 현상일 거라는 생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저 내 고통을 잠재워보고자 하는 내 무의식적인 움직임일 거라고도 추측했지만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어떤 움직임들은 내가 그렇게 이해하기에 어려운 측면들이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의식적인 상태에서 저리고 아픈 다리의 감각을 회복시키기 위해 움직임을 행한다면 절대로 그렇게 움직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할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발목 발가락의 움직임, 다리의 근육 힘줄등의 움직임, 허리의 펴짐과 구부러짐, 엉덩이 근육만의 일어섬과 내려앉음의 움직임 등등이 논리적인 이해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나를 갸우뚱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호두마을 수행기-2>

다음 날(8월14일) 아침이었다. 8시가 되어 좌선수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움직임은 이제 더욱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쪽의 앞무릎이 동시에 들어올려지고 있었기에 내 몸은 점점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이렇게 계속 들어올려지면 뒤로 넘어지고 말텐데 하는 걱정이 스쳤지만 그렇다고 중지할 수도 없는 우습지만 난감한 상황이었다.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하며 그 움직임에 나를 맡겨두었는데 끝내 그 움직임은 멈추어지지 않았고 나는 좌선한 상태에서 뒤로 벌렁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넘어진채로 명상을 계속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지만 뒷사람과 부딪히지 않았서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창피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주섬주섬 다시 일어나 앉았다. 정말 내게는 어처구니가 없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다시 좌선에 들며 또, 아니 계속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 어떡하나 하며 이번에는 어떻게 하든 넘어지지는 않고 버텨봐야 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다시 다리는 동시에 들어올려지기 시작했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곱추처럼 몸을 구부려(그렇지만 실제 내 몸은 그리 구부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내 느낌속의 내 몸이 가슴을 앞으로 최대한 접어 잔뜩 구부리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온 몸에 땀이 흠뻑 흐르도록 용을 쓰고 있었다. 당연히 가슴과 등골에 통증과 답답함이 일어났고 나는 거기에 '주시'의 눈을 올려놓기를 얼마.. 서서히 다시 내 몸은 일으켜지고 가슴도 펴지고 또다시 다리가 올라오고 이런 시소같은 과정을 몇차례 거듭하는 동안 나의 좌선은 좌선이 아니라 거의 씨름같은 몇시간으로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좌선에 이은 행선(걸음관찰)에서도 서서히 새로운 느낌이 나타나고 있었다. 발을 들어올릴 때에 가볍게 밀어올려지는 느낌, 나아갈 때에 무엇엔가 실려서 밀리는 느낌, 놓음에서 부드럽게 내려누르는 느낌 - 그 무얼까 마치 얕은 갯벌을 부드럽게 밟아 누를 때의 느낌 같은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내 비슷하게 씨름같은 좌선과 가벼움의 행선이 거듭되던 중에 같은 날 저녁에는 무려 3시간이 넘는 좌선에 들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른 다리에 통증이 심하게 왔고 눈을 얹어 놓자 다리가 오르내려 통증이 가라앉았다. 이어서 명치부위의 가슴이 오그라들며 답답함이 밀려왔다. 마치 그것은 누군가 정면에서 내 가슴팍에 창을 꽂아 있는 힘껏 밀어 넘어 뜨리려는 어떤 힘이었다.  성성하게(?) 바라보라던데 내게는 거의 오기같은 참음이 생기고 '성성'인지 '오기'인지 모를 바라봄과 버팀으로 사라질 때까지, 또 다시 오른다리 통증, 또 다시 가슴, 이렇게 몇 차례를 거듭했던가 시간은 정각을 알리는 몇차례의 소리가 지나가고 가슴이 펴지는 어느 순간 막혔던 가슴이 확 뚤리는 커다란 개통(開通)의 순간이 일어났다. 순간 나는 막혀있던 내 오른쪽 복부하단에 숨이 차고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의 배 구석구석까지, 가슴 구석구석까지 심지어 등판과 허리 뒷쪽까지 숨이 꽉 들어차는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했다. 그 때의 그 환희는 정말 대단하고 큰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그동안 숨을 잘 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아! 남들은 이렇게 숨쉬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렇게 편안하며 충만한 숨을 쉬어 본 기억은 이미 내 기억속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여태까지 내 모습이 마치 구멍나고 바람빠진 오뚜기 튜브인형(왜 가게 앞에 선전용으로 세워놓는)처럼 바람을 불어넣어도 즉시 새어버려 일어서려다 주저앉고 또 다시 일어서려다 힘 없이 주저앉고 마는 그래서 항상 헐떡거리는 모습이었다면, 지금 힘차게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은 힘을 받아 쭉쭉 일어서며 팽팽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숨을 불어 넣어도 한 없이 들어갈 것 같고 한번 불어 넣은 숨은 전혀 새어나가지도 않아서  한동안 숨을 쉬지 않아도 편안할 것 같았다. 나는 어느덧 발바닥까지 숨을 들어차게 하려고 한 껏 들이마시고 있었는데 힘차게 들이마시고 있는 내 코에서는 거센 바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고 벅찬 호흡의 추억이라서 나는 그 순간이 부디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가슴벅찬 심정으로 그 날의 좌선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사람없는 그 싱그러운 밤공기 속에서 혼자만의 은밀한 새 세상을 맞이하고 있었다.


<호두마을 수행기-3>

3일째가 되면서 나의 수행은 더욱 진지해졌던 것 같다. 나의 일상생활은 더욱 느려졌고 거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가능한 한 세밀하게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 나의 동작들에서 행선을 할 때에 느꼈던 느낌들이 보다 분명하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때 : 마음속으로 일어섬이라고 주지(?)하고 잠깐의 기다림 후에 일어서면 일어섬의 처음 순간에는 보통 때와 별 차이가 없지만 두번 째 단계에서는 거의 아무런 힘도 들지 않으면서 가볍게 밀어올려 지듯이 일어나 짐.

서 있다가 앉을 때 : 앉음 하고 주지한 후 잠깐의 기다림 후에 앉으면 누가 어깨를 내리누르는 듯 바닥으로 내려가고 심지어 바닥에 닿아 앉은 후에도 그 힘이 연속되어서 의식적으로 멈춤이라고 하지 않으면 몸이 뒤로 넘어지려고 함.

돌아설 때 : 돌아섬 하고 주지하고 잠깐 기다리면 돌아서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이 먼저 저절로 돌아가고 있음.

세수할 때 : 내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평소에 내가 세수하는 모습과 전혀 다름,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 마디에 힘이가고 얼굴을 문지르는 나의 동작이 견고하게 이루어져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남. 이를 닦을 때에도 역시 견고함이 느껴짐. 나는 앞이의 안쪽을 닦을 때 손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좌우로 돌려 닦는 버릇이 있는데 내가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머리가 좌우로 빨리 돌아가는지 마치 모터를 단 것처럼 진동해서 깜짝 놀람.

식사할 때 : 젓가락 집음 - 젓가락으로 집는 동작에 견고한 힘이 느껴짐.

     당김 - 손이 끌려 오 듯 하는 힘이 느껴짐.

     넣음 - 음식을 입에 넣을 때 마치 입안에서 끌어 당기듯이 '쏘옥' 빨려 들어감,
              실제로 너무 깊이까지 젓가락이 들어간다고 느껴지고 마치 어른아이들이
              막대에 붙은 마지막 아이스크림을 남김없이 빨아먹을 때 보이는 동작과
              유사함

     넘김 - 입안에서 밀어넣는다기 보다는 목구멍에서 빨아들이는 느낌, 힘있게 빨아들여
              서 꼬르륵 소리가 들릴 정도임. 물이나 음료를 마실 때에 더욱 느껴짐.

계단을 오르내릴 때 : '올림'이라고 주지하면 무릎이 힘들이지 않고 올라가며 '내림'하면 역시 딛는 다리가 힘들임 없이 내려감.

절할 때 : '굽힘'이라고 '마음챙김(?이 말을 많이 씁니다.)'하면 뒤에서 누가 몸을 밀 듯이 앞으로 굽혀지고 그 동작의 힘이 멈추어지지 않아 얼굴이 바닥에 닿은 후에도 계속 엉덩이를 들어올리는 힘이 느껴짐. 사실 반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얼굴을 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는 동작은 쉽지 않으며 더구나 가부좌한 무릎을 세워서까지 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 않을까?  

더욱 황당하게 들릴 지 모르는 이야기라서 좀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내게는 색다른(신비한) 체험이어서 믿든가 말든가 내 착각이라면 그것도 솔직한 내 모습이니까 하는 심정으로 털어놓겠다.

나는 일상에 장난기가 좀 많은 편이다. 아니 그렇지만 그건 장난기 만은 분명 아닌 것 같고 좌선할 때의 내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자연스럽게 연장된 마음의 움직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잠자리 그리고 이름모를 꽃에 대한 추억이다.


<호두마을 수행기-4>

고통이라든지 통증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하여는 내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는 부분이 있다.

군대생활 시절에 고참들이나 장교들의 짖궂고 비열할 정도의 기합과 구타가 있었던 시절에, 처음에는 너무나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그것도 이력이 나면 참을만 해 지는 것은 아마 누구나 경험했던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그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통이 극심해져서 더 이상은 나의 의지로 참기 어려운 정도에까지 다다르면 그 다음엔 나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과정이 있었다. 더 이상은 나의 의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자 하는 '나'와 놓아버리는 '나'가 분리되어지는 어떤 점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 때부터는 더 이상 힘들다는 느낌이나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놓아버린 '나'가 이를 악물고 버티는 '나'를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냥 편안하고 오히려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쉽게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 후로 이것은 내가 극심한 고통이나 통증을 대할 때 대처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우연하게도 마치 좌선을 할 때 내가 통증을 바라보는 태도와 유사한 느낌으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계속되는 좌선속에서 '참으로 인생은 고통이구나!'하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사람의 몸은 아무리 편하고 좋은 자세로 있다 해도 같은 자세로 조금만 오래 지속하면 그 또한 금방 '고통'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처음엔 그렇게 편하고 좋았는데 말이다. '마음'일랑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행복한 느낌도 조금만 오래 지속되면 식상함이 되고 지루함이 되고 이윽고 참기 어려운 권태와 고통이 되지 않던가. 아니 조금 더 나아가면 쾌락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감각들도 사실은 고통의 어떤 느낌들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렵지 않던가.  

苦로 가득찬 인생! 그것이 화두였다. 내가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떠 오를 때마다 그들이 苦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발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사람들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들을 위해서도 나는 자비의 기도를 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 후에 정원에 있는 연못가 벤치를 찾았다. 한적한 자리에 앉으려고 '앉음'이라고 하려는 순간 그 벤치 위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잠자리 한 마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장난기 어린 화두는 또 시작되었고 -그렇지만 나는 정말 진지했다.- '너도 괴로움에 수행을 하고 있구나!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 잠자리는 재미있게도 희한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한 번도 그런 자세를 한 잠자리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 하긴 잠자리가 앉아 있는 자세를 그런 눈으로 자세히 살펴 본 기억도 없지만 - 오른 쪽 앞다리를 지면으로부터 100도쯤 되는 각도로 앞으로 쳐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정말 잠자리가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로 느껴졌다. 내가 앉아도 그 잠자리가 날아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 '앉음'하며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조금 후에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잠자리는 미동도 없이 내 엉덩이로 부터 불과 20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거리에 여전히 앉아있었다. 잠깐 동안 바라보며 잠자리와의 교감에 약간은 흥분되기도 한 나의 마음에 이번엔 내가 잠자리에게 손을 대어도 날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잠자리에게 다가갔고 들고 있는 잠자리의 오른쪽 다리에 살며시 갖다 대었다. 잠자리는 날아가지 않았다. 순간 놀라움에 혹시 그 잠자리가 죽었거나 날지 못할 정도로 거의 죽어가는 상태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이번에는 날개에 손을 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조심스럽게 날개에 손을 대었지만 날아가지 않았다. 순간 날아오른 잠자리는 나의 손에 올라 앉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잠자리를 내 앞으로 가져와 잠시동안 바라보며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네었다. 그리고는 잠자리는 근처의 나무에게로 날아갔다. 나는 날아가는 잠자리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잠자리와도 마음이 통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숙소쪽으로 향하던 나는 이번에는 화단에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꽃에게로 마음이 끌렸다. 그 꽃을 바라보며 '너에게도 苦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저 예쁘구나 하고 바라보기만 하던 그 꽃들도 자세히 살펴보니 가운데 꽃가루 같은 것이 보이며 사람이 그러하듯 일하며 자식을 낳으며 키우며 이런 저런 벌들이며 곤충이며 관계를 주고 받으며 고단한 일생을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그 꽃송이 옆에는 피우기도 前인지 아니면 피운 後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죽어 말라 비틀어진 꽃들이 있으니 어찌 이 꽃들에겐들 苦가 없으며 老病死가 없겠는가 하는 공감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아얏새 미엣나니..' 오랫동안 자비송의 가락이 내 귀와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호두마을 수행기-5>

3박 4일간의 수행을 마치고 호두마을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내가 경험한 몇가지 일들이 이 곳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어떻게 변화할런지 자못 궁금한 터였다. 거의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있는 버스 시간에 맞추기에 출발시간은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재촉하면 그리고 버스가 조금 여유있게 도착한다면 탈수도 있겠구나 싶은데

내 걸음걸이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행선을 할 때의 걸음걸이가 몸에 배어서 발을 들 때에 발의 뒷꿈치부터 들기 시작하여 발의 앞꿈치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최종적으로 발 앞꿈치와 발목에 동시에 힘이 들어가 용수철처럼 힘차게 튕겨 주는 보행법이 자연스럽게 재현되었다. 이러한 보행법이 자연히 신발이 바닥에 약간 끌리게 되는 단점은 있지만 보통의 걸음걸이 보다 좀 빠르고 힘차게 느껴졌다. 버스정류장이 멀리 보일 쯤 되었을 때는 좀 더 속력을 내고 싶은 조바심에 뛰기 시작했는데 뛸 때에도 힘있는 행법은 계속되어서 마치 껑충 껑충 토끼처럼 뛰어가는 기분이다.

몸에 일어난 신선한 변화가 일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뛰다시피 약 20분을 그것도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온 무리한 행보도 몸은 거뜬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40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먼 산에 걸쳐 보이는 구름과 유난히 청명한 달을 바라보며 그 시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노래를 몇 곡 불러 제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이제는 숨이 차야 하는데 아직 숨이 차지 않는다. 바람이 싸늘 부우러 가을은 깊었네... 평소 같으면 중간에 최소한 한 번 이상 숨을 쉬고 지났어야 되련만, 아무리 마음먹고 처음에 큰 숨을 들이 쉬어 시작해도 한 소절을 끝내려면 억지로 참으며 급기야 얼굴이 터질 듯 뻘개지며 겨우 간드러진 숨으로 마무리 했을 텐데 아직도 내 숨은 여유 만만이 아닌가. 그래 내 노래는 훨씬 좋아질 수 있겠는걸.. 흡족함이 내 마음에 그득차 왔다.

천안역에 내려 전철역으로 향하기 전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가게에 들어갔다. 녹차음료를 하나 골라 가지고 나오며 "얼마죠?"하고 아줌마에게 묻던 나는 짐짓 놀랐다. 자주 내가 듣던 그 목소리가 아니다. 아니 그 목소리는 맞는데 한 단계 더 크고 우렁찬 것이 내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조그만 목소리였다.) 역시 기분 좋음이었다. 그 후 나는 얼마동안인가 내 달라진 목소리를 은밀히 즐겼다. 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 지 관찰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내 목소리의 분위기를 알아챈 사람은 유일하게 중학교 1학년인 내 딸 진솔이 뿐이었다. 평소에 아주 조용한 성격의 진솔이는 아빠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는 문득 "아빠 맞어?"하고 묻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는 반문에 '아빠인 것은 맞는데 뭔지 다르다'는 것이었다. 힘이 실린 내 목소리와 말투에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전과는 좀 달라지는 듯 보이고 일(事)에도 추진력이 붙는 것 같았다. 판단력의 한계에 부딪혀서 지지부진하게 얼버무리던 문제들에도 좀 더 자신감있는 판단력이 생기는 듯 했다.

지금은 호두마을을 다녀온 지 약 2주가 흘러가고 있다. 매일 매일의 생활속에서 수행을 계속해가려고 노력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이제 내 몸에서 그러한 변화 - 무의식적 움직임-는 훨씬 약하게 느껴지고 목소리도 다시 예전처럼 들린다. 그러나 호흡은 여전히 편안하다. 여러가지 자극적이고 무거운 스트레스가 얹혀 와도 좀 더 가볍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몇 일은 좀 말(言)이 많아졌다. 그러나 말을 통해 이 경험은 별로 공감되어지지 않음을 느꼈다. 몇몇 사람에겐 정말 이 수행을 권해주고 싶었지만 그 또한 별로 설득력있는 권유가 되지 못함을 절감했다. 아마 그들에겐 내가 몇일만에 너무나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와 호들갑을 떠는 이상한 놈으로 보였을 성 싶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이라 해서 어찌 경험이 작아지랴. 그것은 우리의 시간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일 것이다. 우리의 80 인생은 긴 것이고 하루살이의 하루 인생은 정말 짧은 것이랴. 하루살이의 하루인생도 우리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희노애락과 생로병사의 모든 추억이 깊게 배어든 동일한 길이의 인생인 것이다. 시간의 양이 적기 때문에 삶의 내용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내용이 응축되고 집약되어 짧은 시간에 드러났다면 그 시간은 오히려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게 아닐까. 어차피 적은 시간에 경험되어지는 일이든 많은 시간에 경험되어지는 일이든 '지금 여기'라고 하는 실존(?)적 상황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려니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은 순간일 뿐일텐데.

이번 호두마을에서의 수행체험은 비록 3박 4일에 불과했지만 지난 3년의 삶보다 더욱 많은 변화와 의미을 가져다 주었다. 앞으로의 내 삶에 깊고 다양한 어떤 의미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굼벵이의 한 걸음 같은 이 초보수행 체험기가 혹시 읽게 될지도 모를 여러 인생의 도반들께도 작은 즐거움이 되었으면 하고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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