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으로 호두나 따러 가세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6-09-28 20:51     조회 : 6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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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으로 호두나 따러 가세
                                                                               최운규
풍덩 뛰어들기

  죽음이 이끈 긴 방황, 이제 피곤하다. 더 이상 갈 힘도 의욕도 잦아들었다. 마치 넘어져 일어나기를 포기하고픈 마음이랄까?
  어려서부터 늘 따라붙어 다녔던, 그림자처럼 질기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했던 죽음이라는 상념이 잊을만하면 한 방 먹이고 겨우 숨 쉴만하면 뒤통수 때리는 통에 지쳐갔다. 난 살기위해서 죽음, 삶의 의미 등의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숨쉬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고 책을 만났다. 아니 책과 싸웠다. 내 주변에는 언제나 실존주의자들의 건조한 사상뭉치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책꽂이도 어느새 종교 관련 책들로 채워져 갔다. 이른바 교양인이라면 읽어야 한다는 세계나 한국의 문학 등 밀리언셀러 들은 손에 들려질 틈도 없었고 지금도 어느 자리에서 명저들이 인용될 때는 당황하기도 한다.
  습관이 사는가 아니면 내가 사는 것인가? 모를 일이었다. 참말로 모를 일이었다. 어제처럼 또 반복되는 일상, 생각 없이 움직이는 손발, 마치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눈 뜨고 일어나고 밥 먹고 싸지르는 지루함, 따분함, 두려움의 나날이었다.
  책을 읽으며 잠시 잠깐의 환희는 있었지만 여전히 안개 속 초행길을 걷는 격이었고, 머리는 코끼리 다리는 생쥐 같은 벌레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이 책 저책에서 그럴 듯한 명제를 외기도 하고 방법을 따라하기도 해보지만 갑갑증과 신경증만 커갔다. 아마 그것은 기대와 실천사이의 틈이 쌓여가면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높아가며 혐오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 같았다.
  이제는 풍덩 뛰어들어야 할 때라는 절박감이 날 밖으로 내몰았다. 숫기도 없고 소심한 탓에 선뜻 일을 벌이지 못하던 나였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만큼 압박에 시달린 것이다. 스님이나 목사님께 말 한 마디 못 붙이고 절과 교회 주변만 맴맴 돌던 밥탱이가 마침내 단학수련,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 수덕사의 ‘선 체험’, 한 겨울날의 만행흉내내기 등을 시작으로 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희망의 서곡이었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호두마을에 풍덩 뛰어들었다. 이번엔 분별없이 그냥 턱 맡기고 따라 가 보리라 마음먹고 서산에서 시외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천안과 광덕은 인터넷에 친절하게 안내 되어있었고 게다가 비교적 잘 아는 곳이라서 별 어려움 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는 농로 길은 생명으로 넘쳐났고 평화로웠다. 매미소리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호두마을은 덜어낼 것도 덧붙일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소박하고 단아했다. 구석구석 전문가 냄새는 아니지만 소박한 솜씨와 정성이 배어있는 손길이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 오래 되지 않아서인지 분위기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맑은 샘물처럼 싱그런 순수함과 정성스런 공기가 치열한 초심을 느끼게 했다.

싸띠 그 단순함과 명료함
  
  땡, 드디어 수행과정이 시작되었다. 오직 바라볼 뿐, 다만 얼차려 몸과 마음을 챙길 뿐이었다. 그것이 전부인 듯 했다. 하나의 몸 부위(좌선 때 복부, 행선 때 발)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다. 더 이상 어떻게 명쾌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얼마나 간단할 수 있을까? 참으로 그 단순함과 소박함에 놀랐다. 진리는 언제나 그렇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까지야ㆍㆍㆍ
  하지만 단순함이 쉬움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마와의 한 판 승부. 그것은 가히 처절할 정도의 싸움과 같았다. 스승님과 스님들의 정성어린 지도에 힘입어 수행에서 다가오는 통증과 가려움 그리고 다리 저림은 거의 물러가고 해결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나타나자마자 치유가 되었다. 한 번 사라진 통증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은 걸 보면 평소에 느끼지 못했지만 심신의 조화가 깨져서 생긴 질병이 치유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신비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도반들의 열기에 동참해 나갔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대단한 도반들이었다. 그 무더위, 그리고 곤함을 돌파하는 비장한 몸짓들은 날 기죽게도 하고 때로 분심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흘러가고 있었나? 팽팽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처럼, 쉼 없이 돌아가는 컴퓨터의 씨피유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져갔다. 밑도 끝도 없는 그들은 어디서 와서 왜 왔다가 사라지는걸까? 수행한답시고 집중한답시고 궁행하는 과정에서도 여성도반들에 대한 친밀감이나 소원감이 스쳐지나갔다. 무척 당혹스러웠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면서 생각이 과거나 미래로 딴 청 부릴 때 다시 챙겨 돌아오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들을 읽을 수 있었다.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이 커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너무나 지친 시간에는 덥다는 이유로 샤워한다는 핑계로 주변마을정도는 둘러보는 게 당연하다는 우김으로 땡땡이를 쳤다. 명상은 몸과 마음의 휴식이라지 않은가 라며 정면으로 달려가는 것을 회피한 것이리라. 발에 집중할 때 미식거릴 땐 ‘걷기’ ‘걷기’ ‘걷기’ 쯤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보이지 않는 게으름도 피웠다. 하지만, 수행기간이 다 끝난 다음에야 정말 수행이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쉬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수행방법으로 헤매지는 않으리
  
  사야도의 진리의 노래는 아직도 속삭인다. 그래 노래 아름다운 노래였다. 혜송스님의 치열함은 그 진지함의 향기와 청아한 목소리로 피어났다. 이 얼마나 복겨운 일인가? 나도 알고 보면 참 복도 많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지혜, 생각으로 이해하는 지혜는 날 변화시키지도 정화시킬 수도 없음이 분명해졌다. 몸으로 마음으로 직접 생생하게 현현하게 체험하는 지혜만이 성장을 돕고 질적인 진화를 이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수행방법으로 헤매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 이제 더 이상의 방황이나 갑갑증이나 신경증은 사라질 것 같다. 화두선이든 염불선이든 절수행이든 비주수행이든 기도수행이든 모두 진리에 다가가는 길이겠지만 재가수행자인 초보수행자인 나에게는 단순하고 명료한 위빠사나 수행이 너무 잘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구나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님의 법의 원형이 왜곡이나 변질됨이 거의 없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귀한 수행법 말고 무얼 또 잡을까? 모든 종교들이 긴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와 토속종교와 기존의 사상과 문화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리고 제도화 조직화되면서 변질되는 것은 공통적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불교, 원시불교 공동체의 원형질을 찾아내고 더덕더덕 붙어있는 때를 닦아내며 만나는 것은 진리를 향하는 구도자들의 당연한 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쁨과 감사의 시간들, 이제 가야하리
  
  피곤한 일과 속에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워 있으면 모든 만물들이 아름답고 고마우며 알 수 없는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흘러넘쳤다. 열린 창문으로 귀뚜라미와 다른 풀벌레 친구들의 소리가 정겹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동안의 삶에서 맛보지 못했던 특별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싸띠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몸과 마음의 일치, 생각과 실천의 통합, 지금 여기와의 조화가 느낌을 신선하게 해주고 생생한 기운을 북돋는 것 같았다. 일치와 조화에서 오는 평화와 신선함이 아니었을까? 참말로 위빠싸나 수행은 몸과 마음의 진정한 휴식이었다.
  이제 그냥 묵묵히 걸어가야겠다. 이 의문, 저 분별 훨훨 내려놓고 그저 오직 ~할 뿐으로 가야할 차례다. 어거지 의지와 목표로 지키는 지계와 정진을 너머서 절로절로 행해지고 절로절로 정화되며 진화하는 나 아닌 나를 위해서ㆍㆍㆍ
  호두마을 가족들의 마음으로 주셨던 여러 보시 감사합니다. 공양이며 안내가 어쩌면 그렇게 친절하시던지요. 호두마을이 우뚝 서 있어야 흔들리는 저 같은 이들도 숨쉴 수 있겠지요. 힘내세요. 힘겨울 때 다시 뵙겠습니다. 자비송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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