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간의 행복 찾기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6-09-28 20:53     조회 : 6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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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마을 2005년 9.10월 회지에 실린 수행기입니다.  

17일간의 행복 찾기
                                                                                              

  2005년도 23세의 여름은 나에게, 17일간의 시간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무의미하고 비겁하고 나태한 삶을 살던 나에게, 점점 나 자신에게 실망하여 지쳐가던 나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
  새롭게 태어났다는 그런 느낌마저 준 위빠사나 수행……. 사실 난 위빠사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우연히 대성스님을 알게 되었고, 스님의 권유가 있어 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나를 움직이게 한 건 나일 것이다. 주체 못할 호기심과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위기의식이 호두마을로 이끌었다.

  7월 15일부터 8월 1일까지 17일간의 수행이 시작되었다.
  나를 알게 모르게 지배해 오던 아상…….약 10년이 넘도록 나를 지배해오던 아상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수행을 시작할 초반에는 내가 아상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그것이 견고한 나의 아상을 무너뜨리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월 15일:

  첫날 호두마을에 도착해서 느낀 건 낯설음과 두려움이었다. 낯선 환경을 접하게 되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불교 신자도 아니고 위빠사나가 뭔지도 모르고 단지 스님 말씀만 듣고 온 나에겐 그 마음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방을 배정받고 앉자마자 든 생각은 후회뿐이었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뭔가에 잠시 씌었던 거라고! 주체 못할 호기심이 사람 잡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괴롭혔고 자책하게 만들었다. 분명히 더 나은 삶을 위해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급기야 우울하기까지 했다.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건 그 사람이야 곧 잊겠지만 당사자인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무거운 짐을 덜러 왔다가 더 큰 짐을 안고 가서 더 힘들게 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어떻게든 버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이라 좌선, 행선의 기본적인 수행자세를 배웠고 1시간의 자율 정진 후에 방으로 돌아와 바로 잠이 들었다. 평소와 달리 잠이 쉽게 들 수 있었던 건 긴장한 탓에 몸이 피로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닥친 이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7월 16일 :

  본격적으로 수행이 시작되었다. 취침 시간이 4시였던 나에게 기상 시간을 4시로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 전날 생각지도 못하게 숙면을 취했던지라 3시 45분이 되자 눈이 뜨였고 예불에 늦지 않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머리는 몽롱한 상태였다. 생소한 언어가 많이 낯설었지만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표대로 수행을 하는 것은 힘들고 답답했다. 한 시간 수행하고 한 시간은 쉬는 식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그 대신 수행을 할 때만큼은  최대한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이라 30분 이상하기가 힘들었다. 기본 시간이 60분인데도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60분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노력하고 집중했다. 그랬더니 몸에서 난리법석을 피워댔다. 평소에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속은 아니었나 보다. 좀 앉아있으니 다리, 팔, 등이 저리고 당기고 끊어질듯했다. 고통이 없는 신체 부위를 찾는 것이 더 쉬웠다. 그렇게 수행 방법을 적응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7월 17일~23일:

  점점 수행에 익숙해지기는 했으나 집에 가고 싶은 열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틈만 나면 집에 갈 날짜만 세고 있었고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은 뒷전이고, 집에 갈 생각만 가득했던 것이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수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샌가 수행은 그 자리에서 밀려나 있었다. 인터뷰 때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을 땐 의욕이 샘솟기도 했다. 수행이 하기 싫다가도 이상하게 인터뷰만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 땐 몰랐는데 나중에 혜송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것은 사야도의 멧따(자비) 때문이라고 하셨다. 보기엔 그냥 인터뷰만 하는 것처럼 보이셨지만, 인터뷰하시면서 수행자들에게 강한 멧따를 보내 주신다고 하셨다. 사야도의 멧따는 조용하고 고요하지만 그 힘은 위대했다.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느낌으로 나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조용하지만 그 힘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흘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수행은 몸에 배어 익숙해졌지만 집에 가고 싶은 열망은 식지 않았다. 열흘간만 수행하기로 약속을 하고 왔기 때문에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뻤다. 하지만 지난 열흘 동안 시간만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허전했다. 그렇지만 집은 꼭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왠지 여기서 영영 나가지 못할 것 같은 위기의식마저 느꼈다. 올드보이의 남자 주인공이 된 것처럼…….
  분명히 호두마을에 온 목적은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온 것일 텐데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았다. 많이 힘들고, 미칠 것만 같고, 뭔가 잘못된 느낌이었다. 이곳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스님께 내일 꼭 가야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는 나를 계속 설득하셨다. 스님의 강한 설득에도 나의 맘은 바뀌지 않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나의 아상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라며 크게 꾸짖으셨다.  내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자 급기야는 이대로 가면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겠다.’하시고 가버리셨다. 그 순간  버림받은 느낌도 들고 표현 못할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눈물이 났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맥이 탁 풀리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누워서 이제까지의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의 삶을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 고집, 내 아상 때문이었다. 내 고집을 내가 못 꺾어서 그렇다는 스님 말씀이 옳았다. 마음을 바꿔먹었다. 더 이상 이렇게 비겁하게 살 수는 없으니까. 지금이 나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나로 태어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일주일 동안 제대로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7월 24일~8월 1일: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접고 좌선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집에 갈 생각을 놓아버리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면 진작 놓아버릴 것을…….  나의 아상은 역시 견고했었나보다. 마음을 달리 먹어서 그런지 다른 때보다 집중이 잘 되었다. 관찰하는 능력이 좋다고 사야도도 칭찬을 해주셨고, 발전하고 있으니 며칠만 잘 견뎌보라고 하셨다. 인터뷰를 하고나니 힘도 나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동안 행선에 발전이 없었는데 이제 제대로 할 마음을 먹어서인지 발의 감각이 세밀하게 느껴졌다. 사야도도 행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뿌듯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발의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법문도 전보다 더 주의 깊게 들었다.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장 감명 깊었던 법문은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씀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부처님은 자신을 낳아주신 어머님이 7일 만에 세상을 등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를 위해 법문을 하러 천상에 가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5년을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먹고 잘 자랄 수 있었다. 난 드린 것 보다 받은 것이 많았다. 내가 기억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세월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내가 아버지께 받은 것이 없다고 해서 그분을 원망하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내가 해드린 것보다 그 이상을 받았는데 더 많은 것을 주지 않았다고 미워하며 사는 것은 옳지 않았다. 내 욕심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 이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받았는데, 그것을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어머니께 걱정만 끼쳐드렸었다. 자유롭지 못한 나의 생활을 어머니께 토로했었는데 상황은 그 반대였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정작 어머니였던 것이다. 나의 이기심이 이토록 컸다니 너무 놀라웠고 너무 죄송스러워 눈물이 났다. 효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했다. 죽을 때까지 갚아도 모자랄 텐데 현재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힘든 생활에 웃음을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하지 못했지만 이젠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주의하지 않았던 일상생활에서의 알아차림을 신경 써서 하기 시작했고 그러니까 좌선, 행선 모두 전과 다르게 발전됨이 느껴졌다. 그동안 쌓였던 업이 없어져서 그런지 얼굴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스님들께서도 얼굴빛이 달라 보인다고 하시고 이젠 하루하루가 기뻤다. 몸도 마음도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멧따 보내는 방법을 배웠다. ‘멧따를 보내는 건 일상의 알아차림을 할 때도 아주 필요하다. 수행할 때는 신경이 예민해져서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기가 쉽다.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 미운 사람이 있어서 말을 하지 않아도 볼 때마다 괴로운 경우가 있다. 하지만 미움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미움을 받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괴로운 사람은 바로 미움을 품고 있는 자신이다. 그 미움이 자신의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므로 그 가장 미운 사람에게 멧따를 보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미워죽겠는데 어떻게 사랑을 보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비관을 해보니까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멧따를 보내면 멧따를 받는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겠지만 멧따를 품고 있는 나 자신이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17일의 시간이 흘러갔고 불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16일째 되던 날에 불심의 싹이 틔워졌다. 그동안 수행의 흔적을 담기에 바빠서 정작 중요한 불심을 빼먹고 껍데기만 담았었는데 집에 돌아갈 날이 되니 다행스럽게도 불심의 싹이 났다. 나의 아상이 조금씩 약해진 모양이다. 수행의 흔적을 담으려고 하던 나의 욕심이 사그라지고 불심이 불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17일간의 생활 너무 힘들었지만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이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며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정말 오랜만에 스승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승님의 사랑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막상 떠나려니 스님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했고 함께 한 도반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한 번 이곳을 온 사람들은 다시 오게 돼 있는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호두마을을 떠나왔고 다시 한 번 그곳을 찾고 싶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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