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소중했던 머무름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6-09-28 21:25     조회 : 6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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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마을에서의 주말 수행,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정오까지 40여 시간 동안의 머무름은 내 긴 삶에서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머무름은 다른 곳에서의 머무름과 달랐다.
평생 동안 우리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수 없이 많은 장소에 머문다. 머무름은 시간과 함께 덧없이 흘러간다. 머무름은 머무름일 뿐이다. 머무름에 안주하려는 것은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곳곳에 돌을 놓는 것과 같다. 돌은 잔잔히 흐르는 물을 응어리지게 하고 내리치고 휘돌아 또 다른 흐름과 부딪쳐 처음의 흐름을 왜곡시킨다.

그러나 시내에 놓인 어떤 돌은 안전하게 물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징검다리에 올라서 굽이쳐 흐르는 물을 보면 물가에서 보다 더 자세히 흐름을 바라 볼 수 있다. 맑고 투명한 시냇물이라면 의연하게 바닥을 지키는 영롱한 조약돌의 청순한 빛을 대할 수 있고 가끔 너무나 투명하여 등뼈까지 고스란히 드러낸 물고기의 느린 유희를 볼 수도 있다. 징검다리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저 물가에 서성이며 시냇물이 토해 낸 진흙이나 나뭇가지, 오물로 발등을 적실뿐이다.  

아득한 원천에서 멀고 먼 바다로 흐르는 시냇물은 긴 여정에서 오직 한 순간만 징검다리를 지난다. 징검다리에 이르기 전까지 물은 징검다리를 알지 못하고 징검다리를 지난 물 또한 징검다리를 기억하지 않는다. 물은 징검다리를 휘돌아 간다.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으므로 물은 휘돌아 가는 순간 징검다리의 모든 것을 그대로 감싸 안는다. 휘돌아 가는 순간 물은 징검다리의 모든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징검다리를 지나는 순간 모든 것을 놓는다. 고요하면 고요한 대로, 거칠면 거친 대로 다시 돌아간다.

그 징검다리에 잠시 머문 나는 물과 징검다리와 하나가 된다. 내 삶은 물이기도 하고 돌이기도 하고 물고기이고 모래다. 호두마을에서의 머무름은 어떤 존재도 그냥 스치지 않고 어떤 머무름도 헛되지 않다는 확신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모든 존재는 보이지 않는 파동을 갖는다. 파동은 모든 존재의 본래의 언어다. 그동안 무지하고 성급한 움직임으로 얼마나 많은 순수한 파동을 외면하고 왜곡했던가!

행선 중 움직임을 느리게 주시하다보면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몸의 움직임이 공기를 휘저어 온 세상 존재에게 그 파동을 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죄스럽게 다가온다. 나를 싸고 있는 공기가 내 존재를 포옹한다는 느낌. 그동안 무책임하게 공기를 휘젓고 다녔던 나의 어리석음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나는 작은 연못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와 다를 바 없다. 나는 땅을 딛고 서서 공기를 유영하는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에서의 내 존재는 고요한 수면에 일파만장 파문을 일으키는 돌멩이와 같다. 돌멩이가 큰 파문을 일으키면 물 속의 모든 존재가 휘청거린다. 그 파문으로 고통을 겪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그 고통을 어찌 돌멩이가 알겠는가? 그 고통을 어찌 다른 존재가 알겠는가? 그러나 물은 안다. 그래서 물은 가만히 기다린다. 파문이 갈아 앉기를. 돌멩이가 물 속 깊이 가라 앉아 물 속에 품어지기를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돌멩이가 다른 파문에 의해 깎여 물과 하나가 될 때까지 물은 기다린다. 오직 물만이 그 고통을 안다. 고통을 아는 자만이 깊은 물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내 존재는 여리고 여린 조개의 살 속을 파고들어 단단함을 과시하는 작은 모래 한 알과 같다. 해수물의 밀림도 거부하지 않는 여린 조갯살에 박힌 모래 한 알은 조개에게 전 생명을 걸만큼 큰 고통을 준다. 그 고통은 단단한 조개껍질로 인해 더욱 깊어진다. 고통을 뱉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조개가 겪는 그 인고를 어찌 모래알이 알겠는가? 그 쓰라림을 어찌 파도가 알겠는가? 그러나 물은 안다. 그래서 물은 가만히 기다린다. 쓰라림이 가라앉기를 모래알이 조갯살 깊이 품어지기를.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모래알이 조개와 하나가 될 때까지 물은 기다린다. 오직 물만이 그 고통을 안다. 고통을 아는 자만이 조개 깊숙이 품어져 있는 진주를 볼 것이다.

호두마을에서의 머무름은 위빠사나를 처음 접하는 나를 이렇게 작게, 그리고 크게 만들었다. 웅장한 종소리로 시작하여 긴 염불과 백과 천을 넘어 헤아리는 큰절로 예를 올리는 여느 절의 새벽 의식과 달리 무릎 꿇고 앉아 합장한 손을 이마에 대고 천천히 세 번의 예를 올리는 간소함,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그저 행복하고 평화롭기만을 기원하는 간절함, 좌선 중 혼침과 망상을 거듭해도 죽비 소리 울리지 않는 너그러움, 호두마을 전체를 에두르는 완만한 능선들의 느긋함,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잠시 머무는 수행처 옆 작은 연못에서 함께 좌선과 행선을 거듭하는 아름다운 물고기들, 말을 아끼시고 온 몸으로 풍만한 언어를 전하시는 법사님, 흙과 해로 정성껏 빚은 먹거리를 올려 주시는 자애로운 공양주 보살님, 그외 호두마을을 지켜주시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넓은 방에서 내 요란한 공양을 거부하시는 부처님,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사방을 금빛으로 환히 비추는 여느 절에서 만나는 웅대한 부처님과는 다소 다른, 우리와 비슷한 어두운 피부색에 가녀린 몸매를 가지신 부처님, 그 부처님은 처연하기 조차한 자태로 너무나 냉정하게 나를 아우르셨다. “나를 보지 마라. 눈을 깊숙이 네 안으로 향해라.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있더냐? 지금까지 네가 한번도 제대로 보아주지 않았던 너 아닌 존재를 향한 큰 항해는 작은 너로부터 출발한다. 잃어버린 인드라망의 줄을 하나씩 다시 잇는 것, 그 끝없는 늘임과 느림의 미학이 위빠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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