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막감을 맛보다
갈림길마다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따라 골짜기 깊숙이 차를 몰고 들어가 보니, 위빠사나 명상센터 호두마을의 서너 채 가옥이 아담한 연못을 옆에 끼고 산비탈에 정렬해 있었다. 시설은 깔끔하고, 그다지 불편한 줄 모르고 생활할 수 있었다. 물론 호텔만큼 근사하지는 않다. 하지만 최고급 호텔에서도 구비해 놓지 못하는 것을 몇 가지 갖추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호두마을 특유의 적막이었다.
시골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보니 호두마을 주변이 조용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호두마을의 고요는 여느 산골짜기의 고요보다 한결 깊다. 일반적으로 혼자 있어야만 주변이 조용해지는 법이다. 가령 여럿이 등산을 가는 경우보다는 혼자 오롯이 산길을 걷는 경우 우리는 더욱 깊은 고요와 적적함을 만끽할 수 있다. 나처럼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이 풀벌레 소리 혹은 새소리만 들려오는 적요한 산길을 한두 시간 걷게 되는 경우의 차분한 맛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호두마을에서는 거꾸로 여럿이 있어서 고요가 더욱 깊게 느껴지는 곳이다. 모두가 묵언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말소리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내가 머무는 동안 참여자들 수는 적게는 십여 명 많을 때는 서른 명이 웃돌았는데,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법당에서 함께 좌선이나 행선을 하는 중에 어쩌다 무심코 내뱉는 옆 사람의 숨소리뿐이었다. 여럿이 함께 있는데도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그러한 엄숙한 고요를 우리는 평소 영화관에서 영화가 막 시작되려는 아주 짧은 순간에나 맛보았던가. 그런데 호두마을에서는 온종일 그러한 고요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여 좌선하다가, 천지간에 자신의 호흡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한껏 빠져 들다가, 문득 눈을 떠보면, 주변의 다른 참여자들 모두 각자의 호흡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마치 여리고 힘없는 새들이 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숲의 적막 속에 몸을 숨기듯이, 참여자들은 고요 속으로 적막 속으로 깊이 더욱 깊이 파고들고자 애쓰고 있었다. 이때 느껴지는 적막감은 단순히 조용한 정도가 아니라, 감동 깊은 연주나 영화가 끝나고 나서 혼자 홀에 남아 있을 때와 같은, 밀도가 농밀한 그러한 고요함이었다. 그래서 이내 숙연해지면서 다시 눈을 감고 좌선에 열중하게 되는 것이었다.
2, 자기 자신과 대면하다
처음엔 남방불교의 전통을 따르는 저녁예불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나처럼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참여자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함께 예불을 드리는 동안 마음은 서서히 차분해지고, 특히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을 위해 자비관으로 기도하면서, 그리고 차차 자신이 평소 미워하던 혹은 소원하게 지내온 사람들까지 하나 둘씩 떠올리면서 그들이 모두 평화로워지고 행복해지기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다 보면, 어린 시절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예배당에서 이따금 맛보았던 그 순수하고도 숙연한 평화를 다시금 맛보게 된다. 타인을 위한 무상의 기도에는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을 평화롭게 만드는 힘이 들어 있다. 불상을 놓고 기도해도 혹은 십자가를 놓고 기도해도 기도하는 당사자에게 느껴지는 이 숙연한 평화의 맛은,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어쩔 수 없이 자기도 모르게 다른 참여자들의 행색을 슬몃슬몃 엿보게 된다. 그러나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의 양태를 알아차리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위빠사나 수행법을 기본으로 하는 호두마을에서 자기 자신 외의 것에 신경 쓴다는 것은, 설령 그것이 선의에서 나온 친절일지라도 그만큼 자기수행이 산만하다는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참여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화뿐 아니라 서로 시선조차 주고받지 않는다. 처음에나 슬금슬금 엿볼 따름이다가, 마치 호의를 가졌다가 외면을 당한 경우처럼 섭섭한 채로 이내 자신에게만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 관심과 집중력을 베풀어서 자기의 마음과 자기의 망상을 알아차리는 일이야말로, 타인에게 서툰 호의와 친절을 베풀려고 하는 것보다 한결 급선무의 일이며 인생의 가장 큰 중대사임을 실감하게 된다.
나는 천천히 걷는 행선보다 반가부좌로 앉아 있는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하였다. 일반인들은 좌선을 할 경우 무릎이나 허리가 쉬이 결려 와서 고통스럽다. 다행히도 내 경우는, 그나마 집에서 틈틈이 좌선하던 버릇과 특히 올 유월에는 무상사 하안거에 보름간 동참한 적이 있고, 불과 일주일 전에 봉인사에서 닷새간 위빠사나 집중수련을 익힌 경험이 있는 덕분에, 육체적인 통증은 오십 분쯤 지난 뒤에나 다가왔다. 그리고 나서 통증을 참는 데까지 참다보면 한 시간 삼십 분까지는 반가부좌 자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졸릴 때는 삼십 분 앉아있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열두 시간 동안을 꼼짝 않고 반가부좌로 앉아 있었다 해도, 그다지 자랑할 것은 못된다. 그중 대부분의 시간을 망상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매사가 그렇지만, 위빠사나 좌선의 승패 역시 앉아 있는 시간의 길이보다는 알아차림과 집중력에 있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으면서도, 망상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체크해보니 한 시간 동안 고작해야 사오 분쯤 나는 내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깨달음은커녕 잠깐 동안의 무념무상조차 참으로 요원했다. 스스로가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했지만, 가족 친구 여자 돈 농담 술자리…… 그리고 서로 주고받던 속세의 눈빛들에 대해 기억하고 상상하다보면, 망상은 그러한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달콤한지! 망상임을 알아차린 순간에조차 깨어나기 싫을 정도였다. 최근 집에서 좌선하면서 스톱워치로 내 마음을 체크해본 적이 있는데, 이와 같은 망상은 거의 이삼 분 간격으로 이어졌다. 딸아이에 대한 생각, 최근의 가족모임에 대한 기억, 예쁜 미인, 멋진 집 따위에 대한 환상, 친구들 기억 따위가 쥐꼬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망상은 마치, 내 자유의지대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반드시 밥을 먹어야만 하는 꼴과 같았다. 혹은, 나는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의견과는 무관하게 숨은 쉬어지고 맥박은 뛰고 있는 꼴과 같았다. 내 마음대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계획하고 의도하기도 전에 이런저런 망상들이 끝없이 교차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건전한 생각도 다소 섞여있지만, 지금 여기의 호흡에만 집중해야 하는 순간에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건전한 생각조차 망상의 한 종류에 불과한 것은 틀림없었다.
위빠사나를 통해 자신을 꼼꼼히 체크해보니,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었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었다. 나는 남자가 아니었다. 다만 나는 하나의 …… 남루한 망상덩어리였다.
3, 아주 작은 변화의 기미를 느끼다
둘째 날부터는 일부러 단전호흡을 보다 강하게 그리고 느리고 길게 이어가 보았다. 들숨 날숨을 다섯 번쯤 반복하는데 이분이 걸리는 정도로 길게 호흡을 이어갔다. 오전 내내 이와 같은 호흡을 억지로 이어갔다. 그러다가 오후부터는 너무 억지로 하는 것도 좋지 않을 듯해서 평소대로 숨을 쉬었는데, 이번에는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숨이 곧잘 길고 느리게 이어졌다. 집중력이 강해질 때는 공기가 폐를 들락거린다기보다는 부드럽지만 굵고 단단한 유동성 밧줄이 단전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느낌이 여실하게 잡혔다. 공기의 질감이 매우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았다가 나와서 들이쉴 때처럼, 혹은 오래 뛰고 나서 숨을 몰아쉴 때처럼 몸속을 들락거리는 공기의 결이 보다 선연하게 느껴지면서 물고기가 물 속이라고 하는 기류 속에 살고 있듯이, 나는 공기라고 하는 기류 속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되곤 했다.
그러나 삼사 일째 이마에 강렬한 흰 빛이 느껴진다고 하는 어떤 집중력과 신심이 단단해 보이는 참여자가 한분 있었는데, 그런 분에 비하면, 고작 들이마시고 내뿜는 공기의 감촉이 좀더 선연하게 느껴지는 정도의 내 체험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하루 한 시간 좌선하는 것만도 겨우겨우 할 수 있었던 내가, 하루 열두 시간 이상을 무던하게 반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고, 또 들숨 날숨이 한결 단단하게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나는 매우 기분이 흡족했다. 망상 또한 여전했지만, 전처럼 지나치게 속물적인 혹은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망상의 빈도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음을 스스로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가 꽤나 대견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느새 사박오일의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성과라고 하기엔 너무나 보잘것없는 성과뿐인데, 나는 다시 속세로 돌아와야 했다. 나오자마자 치러야 할 밀린 원고가 있었고, 가족 모임과 친구들 모임이 연이어 있었다. 조금 맑아진 듯하던 정신은 이내 사라지고 나는 호두마을에 다녀오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함부로 농담하고, 사소한 것에조차 의견을 내세워 논박하기를 즐기고, 상대를 대접하기보다는 자신이 대접받기를 원하는 일차원적 욕망으로 가득 찬 평범한 하나의 속물로 되돌아와 있었다.
언제나 이 모양이었다. 무상사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나 봉인사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도 마음은 너무나 맑고 쾌청해진 듯했는데, 나와서는 불과 삼사 일 만에 예전의 속물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호두마을을 나온 지 일주일 후에 다시 봉인사든 호두마을이든 들어가서 위빠사나에 열중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러한 곳으로 일부러 찾아 들어가야만 할 것인가. 나는 마침 조용한 시골 작업실에서 기거하는 중이어서 일주일 정도를 혼자서 수련해보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았다. 식사와 가벼운 운동을 제외하고 55분 좌선하고 5분간 행선을 하는 방법으로 명상만 이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을 체크해보았다. 여전히 명상이기보다 망상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닷새 동안 하루 11시간에서 12시간씩 꼬박 좌선을 이어갈 수 있었다. 평소 산만한 성격의 내가 아무 것도 않고 하루 종일을 그냥 그대로 앉아있을 수 있다니! 이만한 결과라면 일단 시간관리는 성공적인 셈이어서, 나는 내 스스로가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수험생으로 치자면 아마도 나는 아직까지는 공부를 했다기보다 단지 책상에 오래앉아 있는 습관을 들인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험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일단 책상에 오래앉아 있는 습관뿐일지라도 이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인 줄을. 요즘의 나는 이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모두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나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작업실을 갖고 싶은 것이 오래전부터 꿈꿔온 개인적 소망이었다. 그런데 이제야말로 정말로 ‘가장 탄탄하고 안정된 작업실’을 마련한 기분이다. 종일을 앉아 있을 수 있는 힘으로, 이제 도리를 궁리할까, 문학을 궁리할까, 한가로움을 궁리할까. 무엇을 궁리하든,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으며 벌어지는 현상 그대로 알아차리려 노력하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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