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진리에 이르는 여행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6-09-28 22:04     조회 : 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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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파일 연휴에 호두마을을 찾아가려 했으나 같은 절에 다니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함께 사는 보살께서 자꾸 만류하는 바람에 다음 주로 미루었다. 서울에서의 일주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금요일에 부풀어 들뜬 마음을 안고 천안으로 향했다.

천안역에 도착하니 여느 도시의 한 부분과 다름없이 느껴졌고 역전에서 조금  기다리자 611번 버스가 왔다.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안락한 휴식처인 가정을 향해 돌아가는 시간이지만 그중에 나는 가정보다 한층 의미가 더한 수행자가 되어 호두마을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승객들은 성별도 나이도 학력이나 직업 그리고 외형적인 모습이나 그 내면에 숨 쉬고 있는 꿈들이 다를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시각에 같은 버스 안에 동승하고 있다는 시대의 동반자임을 상기할 때 각각은 개인이면서 공동체의 한 부분임을 실감하게 된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교외를 달리고 있다. 주변은 고즈넉한 산들이 마을마다 감싸고 있어 평화롭고 고요한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길가에는 목적지를 찾아 나선 여행자들의 차량들이 종착역에 도달하기 위해 속력을 가속하는 모습이 방금이라도 지구에 종말이 올 듯 한 조급함에 빠지게 한다.

  버스는 위빠사나 수행처 호두마을이라고 쓰인 안내판을 지나 만덕골이라고 돌에 새긴 이정표가 있는데서 멈춰 섰고 나는 그곳에서 내렸다. 새로운 곳에 도착한 것이다. 미지에서의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며, 있지도 않았고, 있었다 해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자 이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거치고 지친 영혼의 안식을 위하여 새로운 수행법을 배워 반 백년이 지난 내 인생에서 앞으로 남은 여정동안의 삶을 보다 뜻 깊게 살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정표 부근에는 자그마한 다리가 있었으며 그 곁에는 가든 도 있고 그 가든 울타리를 따라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청량하기만한 시내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가든 에서 내려 뻗은 뽕나무가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뽕나무 가지 끝은 광덕산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듯 한길이 넘는 개울의 바닥까지 고개를 숙이어 흐르는 물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개울을 따라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폐부의 찌든 때를 씻어내어 가슴속이 하얗고 파랗고 빨갛게 생생한 기운으로 몸은 벌써 천상에 올라가 있는 듯하다. 가지가 제멋대로 춤추며 줄지어 있는 뽕나무를 보자 함께 사는 보살이 생각났다. 겨우내 숨겨두었던 새하얀 생명을 피워낸 아름다움보다는 뽕잎차를 만들기 위해 차 만들기에 딱 좋은 뽕잎을 보며 좋아라! 펄쩍펄쩍 뛸 보살을 생각하자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찼다. 언제나 차와 함께 하는 생활이 이제는 차를 빼고는 우리들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과거를 묻어 두고 새로운 길을 가더라도 어제의 행위의 업들의 모습은 선연할 수밖에 없다는 상념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가 논에는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고, 콩을 심어놓은 밭에는 덩굴식물이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삼각형 지주들이 높게 세워져 있다. 삼각형 지주들은 마치 군인들이 사열식을 하고 있는 듯 장엄했다. 밭들은 거름 져서 모두 검은색이고 검은색 주위를 밭둑 ․ 논둑의 파란 풀들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 경계를 이룬 곳마다 때 묻지 않은 청순한 아가씨의 손처럼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손을 흔들고 있는 호두나무들이 연이어 이어져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호두나무 사이를 아직 맴돌고 있는 청솔모는 작년가을에 맛있게 먹었던 호두 맛을 잊지 못하고 아직도 호두나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생소한 풍경이다. 우리가 사는 전라도에는 집울 안과 밭둑마다에는 감나무, 밤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여기는 쉽게 볼 수 없는 호두나무가 서 있는 것이다. 호두나무를 보면서 호두까기 인형을 생각했다. 러시아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으로 독일작가 호프만의 동화를 대본으로 하여 “소녀 클라라가 크리스마스에 호두까기인형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인형이 꿈속에서 쥐의 대군을 퇴치하고 아름다운 왕자로 변하여 클라라를 과자의 나라로 안내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나의 행로를 예견하는 내용의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엉뚱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농사를 짓는 논과 밭마저도 깔끔함이 돋보이는 게 호두나무 잎의 정갈함에 견줄 만 했다. 호두마을을 찾아가는 내내 시내는 나를 따라오며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고 그 소리에 맞춰 갖가지 새들의 지저귐이 그저 천상의 소리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가야할 천상으로 통하는 문에 도달하는 곳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도 맑고 향기로울 것이며, 푸를 것이며, 꽃들이 만발할 것이며, 공기는 청량하기 그지없을 것이며,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잘 꾸며져 있을 것이며, 향긋할 것이며, 고요할 것이며, 아늑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을 것이며, 환상의 음악에 즐거울 것이며, 선녀들의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을 것임에 이곳과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천안이고 천안에서 광덕산줄기의 산으로 둘러싸인 호두마을을 찾아가는 길 따라 시내가 있고, 호두나무가 있고, 고요함의 침묵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호두마을에 도착하여 일주문 앞에 서니 마음이 더욱 숙연해짐을 느낀다. 일주문에는 믿음 ․ 알아차림, 노력․, 선정․ 지혜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검은 돌에는 위빠사나수행처 호두마을이라는 당호가 새겨져 있었다.

  호두마을에 들어온 첫째 날(5/19)이다. 사무처에서 등록을 마치고 대성스님께서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였다. 수행중의 예절과 좌선, 행선요령 그리고 일과에 따른 주의사항들을 말씀해 주셨다.

  첫째 날 7시 30분에 입제에 들어갔다. 큰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고 앉아서 기다리니 우 에인다까 사야도께서 들어오셨다. 사야도께서 법상에 앉으시자 혜송스님의 빨리어 예불이 시작되었다. 사야도께서 빨리어로 삼귀의례를 시작으로 수계를 주시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내가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아마 저 사야도께서 석가모니의 화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야도의 빨리어는 노래를 하듯 곡조에 맞추어 예불, 수계, 설법 등을 하시는 음조가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반하여 톡톡 튀는 음성으로 통역을 하시는 혜송스님의 목소리가 대조적으로 느껴졌지만 중생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사야도의 입제법문은 성스러운 9계를 수계하여 호지하기를 당부하시면서 알아차림을 잊어버리지 말기를 강조하셨다. 볼 때도, 들을 때도, 냄새를 맡을 때도, 맛을 볼 때에도, 닿을 때에도, 의식할 때에도 알아차림을 놓치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하셨다. 보시, 지계,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으로 정진할 것을 설하시면서 지나간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을 미리 염려하지 말고 현재 이 순간에 의식을 집중하여 알아차림 하여 대도를 반드시 성취하여 도와 과를 이룰 것을 당부하셨다.  

  둘째 날(5/20)은 새벽4시부터 정진이 시작되었다. 좌선을 하기 위해 앉았는데 허리는 아래로 쳐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목 부위도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깨부위는 담이 결리듯 답답함으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시간 속에서 해결되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사회에서의 습관들이 점차 때를 벗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시간단위로 좌선과 행선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점차 자세도 안정되어가고 집중력도 향상되어갔다. 결가부좌로 앉은 자세에서 30분이 지나지 않아 무릎과 발목 그리고 정강이의 통증 때문에 다리를 바꾸었다. 다시 좌선을 시작하였으나 의식의 집중은 그만두고라도 그저 자세를 유지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혼침에 빠져 자세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하루였다.

  인터뷰때 사야도께서는 좀 더 열심히 수행하도록 하라고 경책하시면서 통증이 일어난다고 즉시 다리를 바꾸지 말고 통증을 잘 관찰하라고 지도를 해주셨다. 또한 부처가 될 수 있는 조건 세 가지가 있는데 노력, 신심, 지혜라고 하셨다. 죽음의 시각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듯이, 열반의 길은 죽음의 반대편으로 가는데 오직 몸과 마음을 알아차림으로서 가능하다고 설파하셨다.

  저녁예불 법문에는 열반에 도착하는 길은 위빠사나를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사띠빠사나 위빠사나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갖고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도 부러워 할 것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이 위험에 처해 풍전등화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을 못하면 집중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위빠사나 지혜가 일어나지 않고 도와 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셨다.

  셋째 날(5/21)에도 새벽4시부터 수행이 시작되었다. 좌선 때에는 보다 정신을 차려 집중하려고 들이쉬고 내쉬는 단전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숫자를 세어 졸음 등 잡념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복식호흡으로 단전에 딱딱해 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결가부좌로 한 시간을 마쳤으나 끝날 즈음에는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행선은 발을 들 때는 흔들림이 있고, 나갈 때에는 가볍고 디딜 때에는 늪에 빠지듯 혹은 점차 발이 무거워졌다.

  인터뷰때 우 에인다까 사야도께서는 좀 더 열심히 정진하라고 하셨다.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정진한 결과에 대하여는 모든 것은 노력의 결과라고 하시는 치하의 말씀에 초등학생이 우등상이라도 받은 기분으로 얼굴까지 빨개지며 열심히 수행하리라 마음을 다짐했다. 사야도께서는 처음에는 한 시간도 앉아 있기도 힘들지만 점차 노력하다 보면 자연히 시간이 늘어나고 집중력도 깊어진다며 격려해 주셨다.  

   저녁예불 법문에는 어떤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설법을 하셨다. 몸의 고통은 집착함으로서 생긴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라고 하는 오온(몸)의 원인에 의하여 고통을 일으킨다. 갖가지 보물도 가치가 크지 않으며, 마음도 항상 변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가르침은 자기가 공부해 보고 깨달아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견해가 틀린 사람은 생각마다 어긋난다.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견해가 바르지 못하고, 견해가 바르지 못하면 행도 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법을 바른 법인 줄 모르고, 틀린 법을 틀린 법 인줄 모르면 좋은 길을 두고서도 위험한 길이란 표시가 있는 쪽으로 가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오직 일어나는 순간마다 바로 알아차려 위빠사나 수행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날(5/22)에는 이제 통증을 넘어서 한 시간을 결가부좌로 수행을 하였으며 앉아있기에 익숙해지고 단전의 호흡은 홀로 이루어지는 느낌이나 잡념은 끊이지 않고 오락가락하였다. 행선은 발을 들 때 시원한 느낌과 나아갈 때는 가벼움 그리고 디딜 때에는 발바닥이 갈라지는 듯하다 통증이 느껴졌다. 행선도중에도 끊임없이 잡념이 찾아왔으나 최대한 알아차림 하려고 노력하였다. 마침 오늘이 우 에인다까 사야도의 생신이라 혜송스님과  대성스님께서 점심공양을 보시하여 성찬을 맛있게 먹었다.  

  우에인다까 사야도께서는 인터뷰시간에 어떤 일이든 현재 있는 대로 놔두게 되면 모든 일이 더 나빠지기는 쉬워도 좋아지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어떤 일이든 나빠지기는 쉬워도 어떤 일이든(수양이든, 사업이든, 학업이든, 사회생활이든)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침체된 생각을 갖지 말고 좋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모든 일이 잘되게 되어 있다고 하셨다. 사야도께서는 행선 시에 이쪽에서 저쪽 벽까지 가는 동안 동작을 최대한 느리게 하면서 모든 동작을 알아차림 하여 잡념 없이 저쪽 피안에 이르도록 정진하라고 경책을 주셨다.

  저녁예불 법문에는 은혜를 갚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주제의 설법이었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듯이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은혜, 스승에 대한 은혜, 나라에 대한 은혜, 모든 위험과 해악으로부터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은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조금만 돌이켜 봐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중에 부모의 은혜를 말씀하시는 부분에서는 나와 마찬가지로 모든 수련생들이 마음속으로 흐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의 은혜는 좋은 의식주로 모시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으며 그 은혜의 무겁기가 지구의 무게가 댓잎의 무게에 불과하고, 지구를 모두 담을 수 있는 그릇도 바늘귀에 불과하며, 바닷물도 작은 물방울에 불과할 정도로 그 은혜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버이날이나 돌아가신 부모를 위한 제사의식은 참으로 훌륭한 관습이라고 덧붙였다. 어렸을 적에 받았던 보살핌을 이제 늙어서 몸을 가누지 못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먹을 것, 입을 것, 좋은 처소, 병원진료와 약품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법을 깨닫게 하는 일이야 말로 모든 생멸을 끊게 하는 최상의 보답이라고 강조하셨다.

  다섯째 날(5/23)에는 좌선 중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엉덩이, 무릎, 정강이부분등에 통증을 참을 수 없어 다리를 풀고 말았다. 그런데 자세를 편하게 평좌를 하고 앉으니 호흡의 일어남과 사라짐이 더욱 분명해졌으며, 다시 결가부좌를 하고 앉으니 고관절, 무릎, 발목의 통증과 저림 등으로 다리가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을 관찰하였으며 이때 통증으로 호흡이 더욱 거칠어지고 있었다.

  행선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집중이 잘되는 것 같아 재미있었으며, 시간이 어느새 흘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발바닥에 모든 의식을 집중하며 오로지 발바닥의 변화하려는 의도에 마음이 밀착함으로써 조그마한 틈도 없이 이루어지는 행선이야말로 신비롭기도 하고 새로운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모든 행복가운데에 지금 이 순간에 여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차림 하는 것만큼 더한 행복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께서는 좌선도중에 다리를 바꾸지 통증을 잘 관찰하면 통증이 변화하면서 사라지기 때문에 통증을 끝까지 이겨내야 한다고 경책을 하셨다. 그것은 음식을 먹어봐야 맛을 알 수 있듯이 통증을 관찰하여 사라지는 것을 관찰해야 맛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수행은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행 중에 경험한 사항을 상세히 기록하여야 점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며 좀 더 상세히 수행일지를 기록하라고 경책을 주셨으며 사야도께서는 마음이 건강하면 몸의 건강도 따라서 좋아지기 때문에 마음이 불행하면 몸에도 병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하셨다.

  저녁예불 법문에는 물질과 정신으로 된 몸은 참으로 무상하다는 법문이었다. 법문에 앞서 사야도께서는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모든 생명들에게 까지도 대 연민심을 가지신 부처님! 일체 법을 깨달으신 부처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깨달을 수 있는 생명을 사랑하기를 70먹은 노인이 외자식을 생각하듯 소용돌이치는 파도 가운데서 윤회의 경계를 벗어나도록 구출해 주시는 부처님! 노 ․ 병 ․ 사의 고통을 벗어나 가장 고귀한 행복한 장소에 태어나게 하는 부처님께 예경합니다.” 기도를 시작으로 설법이 시작되었는데 사야도께서는 몸소 닦아야 만 도와 과를 성취할 있다고 하시면서 공부의 첩경은 하심하여 노력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여섯째 날(5/24)에는 좌선 중에는 아랫배에 큰 공이 생겼다. 사라지는 느낌이 있었으며 양쪽 무릎의 통증을 관찰하였다. 아픔을 관찰하여도 실체는 보이지 않고, 통증이 없어지는 듯하다 다시 통증이 되살아나 참을 수 없어 평좌로 다리를 바꾸었다. 평좌를 하고 앉으니 다리는 보이지 않고 호흡만 남아 있는 듯이 느껴졌다. 행선 때에는 들 때 근육이 팽창하는 느낌과 나아갈 때 긴장이 이완되는 느낌 그리고 디딜 때에는 부드럽게 닿다가 통증이 나타나며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새벽 해제법문에는 공덕에 관해서 법문을 하셨다. 위빠사나 수행의 목적은 노․병․사를 벗어나 열반에 도착하기 위해서이며,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라는 것이다. 세세생생 행복하려면 공덕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머뭇거려서는 행복할 수 가 없다는 것이다. 머뭇거리는 사람은 생마다 행복할까 봐 머뭇거리는 것이나 같다는 것이다.

  1950~1980년까지 위빠사나를 전 세계에 부흥시킨 마하시 선사께서는 이 세상에서 더욱 발전하고 행복하려면 보시공덕을 쌓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행복의 뿌리는 공덕(보시, 지계, 사마띠, 위빠사나)이다” 고 하시며, 나무를 심기 전에 뿌리가 들어갈 흙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뿌리가 들어간 만큼 가지가 펼쳐져 과실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시며 남는 물건을 나누어 쓰는 마음으로 보시를 생활화하며, 나와 우리가족들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중생들이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지계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오후 행선 때에는 들 때는 간지러운 느낌과 미끄러지는 느낌 놓을 때는 부드럽게 닿아 뭉클한 것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있었다. 오늘은 5박6일 동안의 수련을 마치고 회향하는 날이라서 간담회를 갖고 청소로 수련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간담회 때에는 5박6일 동안의 침묵을 깨며 침묵에서 일어난 진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심금을 울리며 함께 울음을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분께서는 어려서부터 몸이 너무 아파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법(무생법)을 배우고 싶었으나 50이 넘으면 해결하고 싶었는데, 그간 무생법을 배우지 못했는데 “이제야말로 정법을 만났다”며 울음을 터뜨렸고, 어떤 노 보살님은 목이 잠기는 아픔으로 새로운 법을 만남에 대하여, 다른 보살님은 아픈 가슴을 부여안고 찾아왔으나 수련기간 동안 터지는 울음을 삼키며 울었던 속울음으로 “이제는 가슴이 다 풀렸다”고 또 울었으며, 어떤 처사께서는 사업에 실패하여 도피의 마음으로 수련에 임하였으나 이제는 불법의 가르침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감이 생겼다”고 울음을 감추지 못하던 모습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이 진실이며 수행한 사람의 모습 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법열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침묵을 깨뜨린 금언들 몇 가지는 꼭 기억해 두고 싶다. “이제야 부처님법의 문고리를 잡았다.” “석운스님께서 수련에 앞장서 주셔서 더욱 정진할 수 있었다.” “새처럼 날아다니는 마음은 역시 내 것이 아니구나!” “얻으려고만 살았는데 이제는 버리면서 살도록 하겠다.” “꽃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이는데 이제는 아름다움마저 버리겠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살아야겠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불법인연의 지중함을 느낀다.” “옳음을 알았을 때 바로 실천하는 것이 바른 앎이다.” “100m 달리기 선수가 총소리가 나면 달리기에만 몰두하듯이 몸과 마음을 일치시켜야 한다.” “수행 속에서 모든 것이 정리된다.”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정신을 놓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젊었을 때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수련을 하다보니 지금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생에 안 되면 다음 생에라도 도와 과를 얻겠다.” “음식과 잠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삶이 단순하고 간단해 졌다.” 모두들 점심공양을 마치고 제 갈 길을 가기에 바빴고 함께 수련하던 분들도 모두 사라지고 상시 수행하시는 분 몇 명만 남았다.

  칠 일째 되는 날(5/25)은 상시수행일정이다. 새벽 4시부터 수행정진에 들어갔다. 좌선은 시작할 때 급했던 호흡이 점차 깊어지고 공기의 움직임에 집중시간이 길어졌다. 몸은 빈병 같고 호흡은 빈병을 들락거리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행선할 때 들 때는 미끄러지는 느낌과 나갈 때는 가벼움, 디딜 때는 처음에는 솜털을 밟듯 부드러웠으나 점차 딱딱하게 느껴졌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께서는 행선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칭찬해 주시면서 실제 성품을 보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수행자는 신심, 정진력, 사티(알아차림), 집중력, 지혜 중에서 무엇이 부족한가를 항시 점검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매번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수행상태를 점검받게 됨으로 수행자에게 긴장감을 주며 더욱 노력하여 정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분들의 수행정도를 견주어 더욱 정진하게 되며, 본인이나 다른 수행자에게 경책을 주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모두 수행하는 사람에게 긴요한 법문이며 개인별로 부딪치게 되는 수행의 장애를 제거하여 바른 수행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팔 일째 되는 날(5/26)인데 좌선 중에 쉴 새 없이 들락거리며 움직이는 공기덩어리가 아랫배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나뭇잎처럼 가파르게 요동을 하며 공기가 들락거린다. 다리 통증이 일어나는데도 호흡에 전념했더니 통증이 약해졌다가 사라지고 그러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였다. 단전에서 큰 공기방울하나가 떠오르다가 오른쪽 가슴에 걸려서 답답함이 계속되었다. 우측겨드랑이 뒤쪽 늑막에 결림이 왔으나 어느새 없어졌다. 순간적으로 사티를 놓치는 순간 내쉬는 숨을 따라 아래로 온몸이 뚝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시간째 계속해서 좌선을 진행하자 그렇게 펄럭이던 공기덩어리가 느리고 가늘어지고 깊어졌다. 통나무를 세워둔 것처럼 무릎, 발목, 고관절의 통증이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픔이 있으나 전혀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축구공 만하던 공기덩어리가 바늘귀 만해져서 이제는 단전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호흡이 이루어지는 모습이 신기롭기만 했다. 세 시간째 좌선을 계속하는데 이마에 별똥이 떨어지듯 이상한 힘의 결정체가 머릿속에서 터뜨려지는 느낌이 있었다. 점차 머리전체로 퍼져나가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호흡이 거의 없어져서 호흡이 이루어지는지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몸뚱이는 느껴지나 자신의 육체가 아닌 전혀 다른 물건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4시간째 계속해서 좌선을 하자 오른쪽 가슴에 찌르는 듯 한 통증이 나타났다. 통증을 주시해나가자 통증이 일어나는 부분을 감지하고자 했으나 어느새 통증이 다시 약해졌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께서는 육체를 통나무처럼 느낀 것이나, 또는 전혀 다른 물건처럼 느껴지는 것은 모두 집중력의 결과라고 하시면서 몸과 마음이 구분되어 있는 실상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고 하시면서 그것은 점차 몸과 마음을 분리하게 되는 과정의 일부라고 말씀해주셨다.

  구 일째 되는 날(5/27) 좌선에 들어가니 쉽게 호흡이 가늘어지고 길어지고 깊게 느껴짐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역시 수행을 꾸준히 하면 진전이 있고 그 효과가 바로 바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수행에 자신감을 갖고 더욱 정진하고자하는 보리심이 동하였다. 행선 때에는 들 때 점차 가벼워지며 나갈 때는 가볍고, 디딜 때는 무거움을 느꼈다.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주말수련 입제가 있는 날이다. 60여명이 참석하기로 되어있는데 입제식에 참석한 인원은 40여명정도 되었고 나머지는 토요일에 합류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입제법문에서 우 에인다까 사야도께서는 “일체 처 일체 시에 알아차림을 잊지 말고 알아차림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다. 좋은 대상에는 좋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좋지 않은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 이것이 수행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셨다. “마음 챙김이 이루어지면 어떤 대상이라도 탐․진․치가 일어나기 전에 마음 챙김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수심법의 네 가지이며 하려는 의도를 즉시 알아차림 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자신의 육체와 마음에서 일어나는 가장 강한 것을 알아차림 하는 것 항상 바깥을 향하는 것을 안으로 돌이켜 알아차림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이렇게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며, 영원한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일 째 되는 날(5/28)에는 좌선 중에 잡념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림 하면서 호흡을 최대한 들이마셨다가 참기를 또는 최대한 내쉬었다가 참기를 거듭하였다. 행선 때에는 들 때는 가벼워지면서 미끄러지는 듯 한 느낌이 나갈 때는 가벼움 놓을 때는 부드러움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오늘이 우 에인다까 사야도님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 같아 감사의 문안을 작성하여 대성스님께 드렸다.
  “우리들의 영원하신 스승이신 우 에인다까 사야도님!
그동안 베풀어 주신 자비와 가르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31세계 중생들을 위한 영혼의 기도와 자상하신 법문과 친절한 인터뷰는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스승님의 크신 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계시는 곳마다 우담바라가 만발하기를 기원하옵니다.
그동안 너무 행복했고 크신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야도님께서는 축원을 잊지 않겠다고 치하하시면서 열심히 정진할 것을 당부하셨다.

  초보 수행자는 수행 중에 여기저기 아파서 수행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점차 수행이 익숙해지면 좋은 느낌도 생기며, 또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느낌이 없을 때가 오는데 그때도 수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수행은 모든 과정에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일어나는 대로 알아차리고 집중하면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몸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남과 사라짐만이 있을 뿐이며, 여기에서 무상․고․무아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는 것이다. 몸은 스스로 일어나서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 무상이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 탐․진․치가 사라지고 무상․고․무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상대적인 마음이 일지 않아 차분히 모든 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일어나는 고통을 사라지게 하려고 해도 사라지게 할 수 없으며 고통 스스로 사라져야한다.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림 하는 것과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방법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열심히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셨다.

  “수행도 생각만 하고 직접 수련하지 않으면 아무런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하셨다. 수행자 중에 밀양에서 오신 손용현 거사님의 수행의 진지함과 지극정성을 다해 예불하고 사야도께 예경을 올리고 몇 시간씩 좌선을 하기도 하며 한걸음 옮기며 행선하는 모습에서 천금의 무게로 수행 정진하는 모습이 나의 정진에 큰 경책이 되었다. 사야도께 인터뷰하는 중에도 “좌선 중에 알아차림 하는 마음까지도 사라졌다”고 보고하자 사야도께서는 “아주 좋다”고 찬탄해 마지않으셨다. 행선 시에도 듬, 나감, 놓음의 “모든 과정이 끊어지면서 사라진다”고 하시자 사야도께서는 모든 일상생활도 마찬가지라면서 좋다는 말씀을 몇 번씩이나 하시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야도께서는 도와 과에 드는 시간은 아주 빠르게 도착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무상 ․ 고 ․ 무아의 성품이 커지도록 더욱 정진할 것을 당부하셨다.
그리고 혜송스님께도 인사메모를 드렸다.
  “존경하는 혜송스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넘버원이 수행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넘치는 열정으로 중생구제의 원력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십일일 째 되는 날(5/29)이다. 오늘은 수련을 마치는 날이다. 집에 가는 날이다 는 생각에 새벽부터 마음이 들떠있다. 어젯밤에 허리통증으로 그리고 몸이 너무 피곤한 탓으로 밤새 잠자리만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았다. 서둘러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오늘 법당을 나가기 전에는 성불을 해야한다는 욕심을 내었다. 바른 자세로 앉자 모든 중심이 제 자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몸도 훨씬 가볍게 느껴지고 집중도 잘 되었다. 계속해서 집중해 나가자 몸에 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이제 기운도 생기고 집중도 훨씬 잘되었다. 이제 피로는 다 흩어지고 오직 편안함과 집중만 남아있다. 행복한 아침이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행선과 좌선을 마치고 간담회시간이 되었다. 간담회 시간에는 40여명이 각자 수행도중에 느꼈던 사항들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며 대성스님께서 의문사항을 풀어주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대부분은 위빠사나에 대한 매뉴얼이 상세하지 못했음을 지적했지만 그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내놓으라는 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들을 비롯한 수행자들은 몇 년 혹은 몇 십 년씩을 수행정진하고도 도에 이르지 못하는데 정리가 잘된 매뉴얼이 있다한들 3일 동안에 깨달음을 얻기를 바랐다는 말인가? 우리는 너무 바쁘고 잠시의 여유도 없이 살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은 정진의 결과로 알아지는 것이지 결코 매뉴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10박 11일간의 수행은 내 인생에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 평화, 행복에 이르는 보물섬 지도를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있겠는가? 호두마을에 가는 순간부터 회향하기까지 모든 일들이 꿈속에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이다. 회향하면서 수련기간을 돌이켜보니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졌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님, 혜송스님, 설립자이신 손병옥 고문님, 호두마을 이사장님, 사무국장님, 후원보살님들, 호두마을을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 함께 수련했던 분들, 이 세상을 함께 하는 모든 분들, 부모님과 가족들, 평생을 함께 했던 이웃과 직장동료들, 모든 분들의 은혜에 감사와 고마움을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음을 느낀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님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분명한 길을 보여주시고 수행의 방법을 일러주심이 어둠에 빛을 들어 보이심과 같습니다. 수행을 하는 대로 그 결과를 즉시 느끼고 알 수 있게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니 용기백배하여 정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립자님을 비롯한 호두마을에 관여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재가 불자들이 마음 놓고 수행할 터전이 없어 불자들의 수행인연을 이끌어 주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큰 서원으로 자비를 베푸신 공덕이 한량없습니다. 아늑한 광덕산 줄기에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최고의 시설을 갖추어 수행터전을 제공하여 주신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수행도량에서 정진하는 것은 우리들의 복덕이요 선업의 결과라는 생각합니다. 또한 설립자와 관여하시는 모든 분들의 보시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세세생생 만복이 깃드시고 연화장세계의 복덕으로 충만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수행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갖가지 재물을 보시하고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과 언제나 맛있는 공양을 해주신 후원보살님들의 노고와 공덕에도 감사드립니다. 호두마을에는 단단한 호두처럼 천년의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진짜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대화로 자신의 진짜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호두마을에서 수행하신 모든 분들의 위빠사나 수행공덕으로 이 세상에 평화가 함께하며, 모든 분들의 가슴에 자비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할 뿐입니다.
싸두(기쁩니다), 싸두(기쁩니다), 싸두(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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