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또는 수행으로부터의 따뜻한 마음 1 (김정빈 수필)
  글쓴이 : 마을지기     날짜 : 10-07-30 09:53     조회 : 5959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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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 또는

 

수행으로부터의 따뜻한 마음 1

 

 

김 정 빈

(작가, 호두마을 프리위빠싸나 지도법사)

 

 

 

 큰아들이 돌아오던 날

 어제 큰아들이 군에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아들에게 다가가 아들을 살며시 안아 주었습니다.

 저는 운전석에 앉아 그걸 바라보며 그냥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사랑 표현에 서툰 70~80세대였던 셈입니다.

 

 몸집이 작은 제 아들은 커다란 군용 백이 무거웠다고 말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키가 작은 게 제 키가 작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당연히 밝았을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세상사는 그처럼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제대 자체야 물론 홀가분한 일일 테지만, 그로써 얻어진 자유라는 선물에는 책임이라는 짐이 따라옵니다.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막막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군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대학에 복학하는 젊은이들은 책무감이 좀 덜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아들처럼 대학교를 마친 상태에서 군에서 제대를 하여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앞으로의 일이 걱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표정이 밝은 것은 아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을 만한 몇 가지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장래에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으며, 저 또한 아들의 그 믿음을 믿습니다.

 

 이 점에 대해 저의 경우를 말하자면, 저는 33년 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는 막막한 채로 군에서 제대하였습니다. 제게는 돌아갈 학교도, 일할 직장도 없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커녕 갈 길조차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어찌어찌 하다 보니 길이 열리고 마침내 글장이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일 년 내내 베스트셀러 일등을 유지한 책을 낸 적도 있습니다.

 

 그때 얻은 이름에 의지하여 지금까지 글을 쓰며 살아오고 있지만, 더하여 ‘치열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에 관한 관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오고 있지만, 이 행운은 운명이 도와준 덕분이지 제 능력이나 노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적으로 행운의 힘으로 된 일만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 덕을 꽤나 많이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행복했던 지난 한 해

 여기에서 제가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정신’과 ‘마음’입니다.

 

 예전에 저는 이 두 단어에 대하여 전자는 지적인 인식을, 후자는 정서적인 느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정리는 대체로 유효합니다. 그런 전제하에 저는 지금의 저의 정신과 마음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의 제가 제법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내는 제가 예술가여서 그렇다고 말합니다만, 저에게는 약간의 ‘조울기’가 있습니다. ‘조울증’이라는 정신질환이 있어서 이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 말고는 다른 적당한 말이 잘 생각나지 않아 이 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요컨대 저는 매우 고양되고 행복한 상태(조증)와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를 오고가는 경우(울증)가 가끔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체적으로는 평온한 때가 가장 길고, 울증보다는 조증을 더 많이 경험합니다. 그런데 작년의 경우에는 특히나 조증― 즉, 마음이 한껏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상태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 조증은 제 평생을 통해 보더라도 처음 있는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저는 “나는 지금의 이 상태에 전적으로 만족스럽다”는 기분이 됩니다. 저는 행복이라는 말의 정의를 “그 상태에 만족스러워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감정”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행복감을 꽤나 강하게 맛본 셈입니다. 그 행복감은 때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 느끼는 희열의 수준까지 상승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수준의 높은 희열감을 전에도 가끔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4년 전에 지은 제 집의 이름을 ‘감나무집’이라고 지었습니다)을 짓기 전, 저는 당시에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농촌 마을의 전원주택 한 채를 빌려 집필실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이면 늘 그곳으로 향하게 마련이었는데, 아내는 저를 현관에서 배웅하곤 하였습니다. 출근을 할 때 저는 아내와 포옹을 합니다. 포옹은 어느 날은 평상심으로 하게 되지만, 조증이 있는 시즌에는 다릅니다. 그때 저는 아내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어느 때는 제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동이 되어 어쩔 줄 모르는 지경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를 꼬옥 안고 온몸을 관통하는 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과 재작년에 자주 느낀 아내와 삶에 대한 사랑의 희열감은 그 수준 면에서 전에 느끼던 감동의 정도보다 훨씬 강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 집필실은 ‘감나무집’ 2층에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내와 지내는 시간이라는 면에서 볼 때 저는 여느 남편에 비해 두세 배 이상의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면 사람의 관계는 좀 심상해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라고 해도 그런 점은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작년에 아내를, 그리고 삶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한 것은 아내가 저의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담연한 태도로 받아들여 준 점이었습니다. 아내는 저의 이 같은 조증(희열감)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담담하게 저의 감정을 수용해 주었고, 실제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저는 평상의 마음을 회복하였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작년에 제 평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일 년을 보냈습니다. 다만, 경제 문제가 때때로 저의 행복감에 걱정거리로 다가올 때가 있었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가 느꼈던 행복한 일 년을 회상하며 제 행복이 무엇으로써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짚어 보니, 제 행복은 여러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제 행복의 첫 번째 요소는 무엇보다 ‘건강’이었습니다.

 

 사실 저의 건강은 평생에 걸쳐 썩 자랑할 만한 정도는 되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조금씩 부족했습니다. 충분한 건강을 10으로 놓고 질병을 그 10이 3 정도로 낮아졌을 때를 의미한다고 가정할 경우, 저의 몸 상태는 나쁘면 4, 좋으면 5 정도에서 오가는 수준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작년 봄부터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따져 보면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이에 대해서도 일일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이 같은 건강의 회복은 저의 행복의 기초가 되었고, 비단 제가 아니더라도 건강이 행복의 전제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저를 행복하게 한 요소는 건강을 바탕으로 제가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저는 일 년 중 글을 쓰는 시간을 대체로 보아 2,3개월밖에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9,10개월은 무얼 하느냐고 묻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글을 쓰는 2, 3개월이 시작되기를, 저의 4,5인 건강 상태가 8,9의 수준에 이르기를 기다립니다.

 

 물론 그 기다림의 기간에 책을 읽기도 하고 사색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 기간은 글을 쓰는 기간에 비해 덜 행복합니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하는 것도 집중의 일종이고, 집중은 마음을 평온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지만 그 집중의 정도는 책을 쓰는 것에 비하면 낮은 편입니다.

 

 그런데 작년의 경우 건강이 좋아진 때를 기준으로 볼 때 거의 70퍼센트 정도를 글을 쓰는데, 또는 그와 대등한 창조적인 일(영상물을 제작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아니라 프로젝트 하나가 이루어지는 과정 전체를 집중하는 날로 보아 그랬다는 의미입니다.

 

 그 집중이 저를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집중은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고, 마음이 한 곳에 모이면 잡념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잡념이 없어진다는 것은 번뇌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복은 이 번뇌 없는 마음을 전제로 자연스럽게 꽃피어나는 결과물입니다.

 

 저의 집중은 당연히 생산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로서 저는 작년에 큰 성과물 두 개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거의 소득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점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점이 아니라 그 집중의 기간 동안 제가 행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내와 명상이 가져다준 행복

 저를 행복하게 한 또 하나의 요소는 제가 그동안 거의 놓고 있다시피 했던 ‘명상’을 다시 시작하게 된 점입니다. 그러나 작년의 저의 명상 수행은 ‘열심히’가 아니라 ‘약간 노력을 기울이는’ 수준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전에 수행을 했던 덕분이겠지만 작년에 명상은 저의 행복감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제가 놓고 있던 명상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아내 덕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가 명상을 시작한 1989년 이래로 아내에게 명상을 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권유 차원에서 두세 번 말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또한 저는 제가 하는 명상이 저 자신은 물론 아내에게도 좋은 것이 되도록 유념하였습니다. 이런 저의 태도가 아내로 하여금 저의 명상을 후원해 주는 마음을 내도록 했었나 봅니다. 저는 아내의 지원을 받아 외국(미국과 미얀마)으로 나가 명상에 전념하는 기회를 여러 차례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8월의 어느 날, 아내는 오래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리기라도 한 것처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명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아내의 구루(교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명상을 하는 동안에 일어난 몸과 마음으로부터의 현상을 기록하도록 한 다음 하루에 한 번씩 그것을 점검하며 지도해 주었습니다.

 

 아내의 명상은 나날이 진보하였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아내는 사물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전에 비해 보다 큰 마음의 여유 공간을 확보하는 것 같았습니다. 본래부터 성품이 부드럽고 온아한 사람인 저의 아내는 명상을 통해 그것을 더욱더 심화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저에게 사람들이 ‘슬프고 안쓰러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을 슬프게 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이 감정을 불교에서는 ‘자비심’이라고 부르는데, 자비는 사랑을 의미하는 자(慈)와, 동정을 의미하는 비(悲)가 합쳐진 말입니다.

 

 자비심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필연적으로 죽게 마련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보다 넓고 보다 깊은 이 관점에서 볼 때 부자도 권력자도 불쌍합니다. 명예를 얻은 사람도,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도 안쓰럽습니다. 그들 또한 언젠가는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당하게 되면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재산 · 권세 · 명예 · 미모 등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변해 버리게 됩니다.

 

 보다 멀고 긴 이 관점.

 

 이 관점을 가진 자비의 사람은 남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욕할 때 그는 그 사람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합니다. 그가 보다 멀고 긴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그가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 독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슬프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 자아를 보호하려는 마음보다는(또는 그 마음과 함께) 타자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 많이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로 번안할 경우, 이 감정은 ‘아가페(agape)’의 사랑이 될 것입니다.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인간의 신을 향한 사랑, 그 결과로서의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여기에서 ‘신’을 ‘진리’로 바꿀 경우, 아가페와 자비심은 완전하게 같은 의미의 말이 됩니다.

 

 이 자비심과 아가페의 사랑은 나만을 생각하는 좁은 울타리를 무너뜨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년에 저와 제 아내가 그런 자비심이나 사랑을 경험했거나 체득했다고, 그럼으로써 나만을 생각하는 좁은 울타리를 무너뜨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다만 그를 향한 아주 조그만 ‘실마리’를 잡았거나 보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실마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실마리로부터 우리는 참다운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을 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심은 동정심의 일종이고, 동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것은 나는 강하고 상대가 약할 때 일어납니다. 두 번째 것은 나와 상대가 함께 약할 때 일어나는데, 자비심은 이 두 번째 동정의 다른 이름입니다. 바꿔 말하여, 자비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불쌍하기 때문에 남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그에 비해 일반적인 동정은 자기는 불쌍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만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자비심으로서의 동정은 일반적인 동정보다 훨씬 아름답고, 훨씬 고귀하며, 훨씬 우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저는 “선행을 하되, 그것을 강자의 약자에 대한 동정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동일한 약자라는 의미를 배경에 두고서 하라”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런 동정 · 이해 · 자비 · 사랑의 마음은 남들에게 이익을 주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참다운 이익의 꽃을 피웁니다. 그런 동정 · 이해 · 자비 · 사랑이 훌륭한 것은 그것이 남들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보다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남들에게 이익이 주어지기 이전에 자기 자신부터 이롭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자비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자기 자신의 ‘에고’를 약화시킵니다. 그 다음, 에고의 약화는 집착의 약화, 욕망의 약화, 긴장의 약화를 유발하고, 이 자아의 약화로부터 남을 향한 동정이 생겨납니다.

 

 이런 흐름을 통해 우리는 자비심을 일으키는 동안 거친 세파를 뚫고 나오는 동안 얼어붙었던 마음에 봄 햇살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의 긴장 · 경직 · 탐욕 · 집착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내리게 됩니다. 이 ‘해빙(얼음이 풀림)’의 다른 이름이 마음의 여유로움 · 마음의 한가함 · 마음의 부드러움입니다. 그리고 여유 · 한가함 · 부드러움을 가진 마음은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이 과정은 꽃의 향기로써 보다 더 잘 비유할 수 있습니다.

꽃은 향기를 만들고, 향기는 벌 나비와 사람에게 이익을 줍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꽃의 향기는 벌 나비와 사람에 앞서 꽃 자신에게 먼저 이익을 베풉니다. 벌 나비, 즉 남들이 이익을 보는 것은 꽃 자신이 이익을 보고 난 다음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자연스레 주변으로 퍼져나갑니다.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을 낳습니다. 첫 번째 행복이 두 번째 행복을 유발하고, 두 번째 행복이 세 번째 행복을 유발합니다. 바꿔 말하여, 행복한 사람은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웃는 사람, 기쁜 사람, 행복한 사람은 이런 식으로 남들에게 이익을 베풉니다. 따라서 그는 선행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선행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웃고 있고, 기뻐하고 있고, 행복해 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남들을 이익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마음이 행복해져 가는 아내를 옆에 둔 제가 작년에 매우 행복했으리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술에서 얻은 행복

 그리하여 저와 아내는 행복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도반)가 되었습니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저희는 그런 부부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마주보는 관점에서는 부부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영혼의 벗(soul mate)입니다.

 

 나아가, 아내는 저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처음 우리는 강의하는 사람과 강의를 듣는 사람으로 만났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아내와 연애를 하는 여섯 달 동안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이십육 년, 저는 다른 의미에서 아내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와 아내의 사이가 좋았을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겠습니다. 사실, 비단 작년이 아니더라도 저와 아내는 거의 다투지 않는 편입니다. 연애 시절까지 합쳐 이십육 년, 저와 아내가 목소리를 높인 경우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 아주 드문 경우를 제하면 저희는 평온한 부부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런 무던한 부부로서, 저와 아내는 ‘드라이브’를 즐깁니다. 저희는 시간이 날 때면, 또 데이트를 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곤 합니다. 그리고 그 차 속의 데이트는 작년의 경우 더욱 잦아졌습니다.

 

 저희가 드라이브를 하는 곳은 저희가 사는 평택에서 3,40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인근 지역의 명소들입니다. 저희는 평택 · 안성 일대의 이곳저곳을 가보곤 합니다. 서해안과 안성의 용설리 · 금광리 쪽으로 가서 호수를 보기도 하고, ‘산장 휴게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운수암’에 들러 약수를 마시기도 하고, ‘사랑의 교회 수련원’에 가서 차를 마시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저희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미리내 성지’입니다(이곳은 김대건 신부님을 기리는 장소입니다). 몇 해 전에 저희가 사는 데서 그쪽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겨서 미리내 성지로 가는 길은 더욱 편해졌습니다. 제 집에서 그곳까지 가는 데는 20분 정도, 거기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서 천천히 돌아오면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렇게 드라이브를 하면서 저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의 소재는 작년의 경우 둘째 아들에 대한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인 둘째 아들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아들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때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 부르기는 주로 저의 몫입니다. 아내는 자기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제가 노래 부르기를 워낙이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노래를 부르는 것인데, 그렇기는 해도 제가 노래를 썩 잘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부르는 노래는 가곡이 주를 이룹니다만 딱히 장르에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장르를 바꿔 가며 노래를 부릅니다. 저는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아내가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음 높이로 노래를 부릅니다.

 

 이처럼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제 기분이 좋을 때마다 늘 나오는 버릇입니다. 저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있을 때나 친분 있는 분들을 태우고 있을 때에도 노래를 부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많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될 것입니다.

 

 다행한 것은 아내가 저의 노래를 매우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아내는 저와 드라이브를 하면서 저의 노래를 들을 때 매우 행복하다고 합니다. 아내는 차 안에서 제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더불어 저와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내에게 그렇게 좋은 드라이브 데이트를, 저희는 작년에 일주일에 한두 번, 어느 때는 네댓 번씩이나 즐겼습니다.  그 데이트는 저를, 그리고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작년은 저희의 결혼 25주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내에게 은혼식다운 무슨 보답도 해 주지 못했습니다. 하와이에라도 다녀왔으면 싶었지만 건강도 건강이려니와 경제적으로도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결혼기념일을 전후하여 충남 대천 앞바다에 갔습니다. 그동안 아내의 건강이 안 좋아서, 거기에 저까지 건강이 안 좋아서 저희 부부는 불과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이 바닷가에조차 갈 수 없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는 되겠다 싶어져서 간 결혼 기념 여행이었습니다.

 

 평일, 사람의 발길이 드문 아침나절이었습니다. 저희는 한적한 모래 언덕 나무 밑에 앉았습니다. 공기는 서늘하고, 눈앞에 푸른 바다가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내를 위해 선물을, 노래 선물을 바쳤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불러 준 노래는 멕시코 민요인 <제비>였습니다.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푸르른 저 별빛도 아름다워라.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은

그 모습 언제나 꿈속에 있네…….

 

 (이하 제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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